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02
에필로그
시간은 테오라 편이었다.
테오라는 모두의 예상대로 아이돌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록의 주인이 됐다. ‘아이돌’과 ‘테오라’를 동의어로 생각할 만큼 테오라는 대표성을 가진 아이돌로 거듭났다.
콘서트 투어를 한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하눌의 주가가 치솟는 건 이제 해가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 되었다.
누구도 테오라가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생긴 이래 최고의 성과를 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1군, 탑 아이돌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중세 시대 계급에 빗대면 황제나 다름없는 위치에 오른 지 오래였다. 테오라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을 생각하면 황제도 적절치 않은 비유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테오라를 이렇게 불렀다.
‘갓 아이돌’이라고.
* * *
오랜만에 내가 어릴 적부터 다니던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기 검사 때문이 아니라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였다.
일부러 오고 싶지는 않았던 병원이었지만 힐링 음악회는 자신이 넣어달라고 했던 스케줄이라서 거부하려면 이유를 밝혀야 했다.
여러 해가 지나기도 했고 이 병원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은 누구나 겪게 되는 일. 유난스러워지기는 싫어서 아무 말 없이 스케줄을 받아들였다.
병원 로비에 들어섰을 때부터 서늘한 병원 냄새가 어두운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매년 절망적인 결과만 내놓던 정기 검사,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꺼림칙해하던 시선, 적선하듯 던지던 연민 섞인 위로….
현오 형과의 이별을 제하고서라도 이 병원과는 좋은 기억이 없었다.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병원 앞에서 현오 형을 처음 만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슬픔에 퇴색되어 아득하기만 했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힐링 음악회에 어두운 표정은 NG겠지만, 눈 아래를 전부 가린 마스크가 숨겨줄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만 긴장을 풀고 있기로 했다.
생각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린 아기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점을 의식했는지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부분 잔잔한 기악곡인 이유도 있는 듯했다.
“서프라이즈 공연 괜찮겠죠? 심장 약한 노약자분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옆에 있는 매니저 형만 들을 수 있을 크기로 작게 속삭였다.
주위를 살펴본 매니저 형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만 조심하라고 했다. 정체를 드러낼 때 깜짝 놀라게 하지만 않으면 된다면서.
작은 트러블이 생겨도 여긴 병원. 능력 있는 의료진이 바로 응급처치를 해줄 수 있는 장소였다.
오늘 부를 노래도 부드러운 발라드이니 매니저 형 말대로 밀려 넘어지거나 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아마추어 씬에서 유명하다는 재즈 트리오 팀이 바로 앞 순서로 나와 애니메이션 OST로 흥을 돋웠다.
마지막 곡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동요였다.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포근하게 고막을 울렸다.
그 명랑한 목소리의 주인은 의외로 어딘가 아픈 아이들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 폴대를 끌고 오지 않았어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초췌한 안색이 눈에 띄었으니까.
배부른 투정을 부렸다는 부끄러운 자각이 들었다. 저 어린아이들도 힘내고 있는데 다 자란 성인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더욱 마음을 담아 노래하기로 했다. 항상 무대 위에선 진심으로 노래하지만, 내 노래를 듣게 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나에게 순서가 넘어오고, 천천히 무대로 나가는 동안 내게 꽂히는 시선의 고스란히 느껴졌다. 솔로 가수 같은데 누구길래 얼굴을 꼭꼭 숨기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시선이었다.
“다음 순서는 어렵게 모신 분인데요. 희귀 난치병을 앓는 소아를 위해 써달라고 큰 금액을 기부해주시기도 한 후원자이시기도 합니다.”
이 병원만이 아니라 여러 대학병원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었다. 빠르게 늘어나는 통장의 숫자에 감흥이 없어질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매년 기부해도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와아, 터지는 감탄사가 민망하기만 했다. 받은 사랑만큼도 돌려주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마스크 벗으면 놀라실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목소리로 힌트를 주시는 게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목소리만으로 제 정체를 알아채는 분이 계실까요?”
노래하는 목소리도 아니고 짧은 인사였는데도 몇 사람이 단박에 헙, 하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으악! 알아요! 테오라?!”
“제 옆에 서 있는 분이 누군지 알면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그래도 여기는 정숙해야 하는 병원이나 데시벨을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에.”
테오라라는 이름이 나올 때부터 동요하던 관객들은 나를 뚫어버릴 기세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테오라의 누군지 밝히지 않았건만 다들 눈치챈 듯했다. 최근에 내 개인 앨범 발매 소식을 들었다면 굳이 추리하지 않아도 알 문제였다.
“반갑습니다. 테오라 함이원입니다.”
개인 앨범을 내고 활동하고 있지만 항상 ‘테오라 함이원’으로 소개한다. 멤버들이 각자 개인 활동을 한다고 해도 아이돌 테오라라는 정체성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끄흡!”
“테오라…! 함…!”
크게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분도 계셨고, 비틀거리다가 옆 사람 팔을 붙잡는 분도 계셨다.
그 행동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한 과장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우리를 마주쳤을 때 말도 못 잇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분은 너무 흔했고, 콘서트마다 실려 가는 팬들이 속출해서 구급차와 응급요원을 넉넉히 배정하게 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우리 팬으로 보이는 분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느 정도는 진정한 것 같았다. 그분들을 달래듯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세 곡 부르고 갈 예정인데요. 첫 곡은 이번 개인 앨범 타이틀이고, 두 번째 곡은 제가 테오라 앨범 수록곡 중에 골라서 편곡해왔어요. 그리고 마지막 곡은 정하지 않고 왔거든요? 두 곡이 끝날 때까지 무슨 곡을 듣고 싶은지 말씀해주면 불러드릴게요.”
어떤 곡이 신청 곡이 되든 즉석에서 부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웬만한 곡은 머릿속에 들어 있으니까. 일부러 어쿠스틱 기타도 들고 왔으니 반주도 문제없었다.
두 곡을 부르는 동안 관객들이 내 노래를 음미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리스너만 있다면 백 곡이든 천 곡이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개구쟁이 꼬마나 아직 이유식을 먹고 있을 어린아이들까지도 조용히 들어주는 게 대견했다.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아기도 보였다.
선곡도 적절하고 TPO에 어울리는 노래라 관객들도 편안하게 들어준 듯했다.
“마지막 곡은 뭐가 좋을까요?”
나지막하게 물었더니 대답도 작게 돌아왔다.
“어떤 이름으로도….”
“어떤 이름으로도 불러주세요…!”
내가 작곡했지만 부른 지는 오래된 노래였다.
‘어떤 이름으로도’라는 곡이 무료로 공개된 이후 하루하루를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었다더니. 허튼 말이 아니었는지 관객들은 입을 모아 하나의 곡명을 이야기했다.
팬들이 콘서트 셋 리스트에 꼭 넣어주길 바라는 곡이기도 했다. 콘서트가 아니면 부른 적이 없는 곡이라 팬들 사이에선 성덕만 들을 수 있는 귀한 곡으로 자리 잡았다.
“콘서트 아니면 부르지 않는 곡인데, 특별히 작은 콘서트라고 생각하고 불러보겠습니다. 어떤 이름으로도.”
우연 아니면 어떤 운명처럼
현오 형과 헤어진 이곳에서 이 곡을 부르게 된 것도 운명일까. 모든 것이 정해진대로 흘러가는 거라면, 현오 형과 다시 만나게 되는 미래도 운명이기를 바란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 해도 내 멋대로 믿어버릴 테다.
당신이 심어놓은 위로보다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 선물할게요
당신과 함께 만들어낸 노래를 더욱
즐겁게 부르겠다고 다시 약속할게요
이제 언젠가 다시 만나더라도 현오 형에게 당당히 자랑할 수 있다. 현오 형에게서 선물 받은 목소리와 꿈으로 갓 아이돌이 됐다고. 형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고.
언제나 기억해줘요 그 어떤 이름으로도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누군가가 있음을
노래 가사처럼 언제 어디서든 현오 형이 행복했길, 행복하길 기원한다.
현오 형과의 추억이 많이 담긴 곡이라서일까? 노래 부르는 내내 현오 형에게 불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현오 형이 듣고 있다면 꿈에라도 찾아와달라고 속으로 부탁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시린 감정을 목 너머로 삼켰다.
집중하느라 감겼던 눈을 천천히 떠서 앞을 바라봤을 때 앞에 있는 세 살이나 됐을까 싶은 꼬마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꼬마는 형으로 보이는 소년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훈훈한 형제라면서 스쳐 지나갈 광경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그 꼬마에게서 눈을 떼어낼 수 없었다.
어린 꼬마가 고요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꼬마의 형으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낯익어서도 아니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느라 앞이 뿌옇게 보일 텐데도 꼬마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눈을 깜빡이면서 눈물이 걷어낸 뒤 본 꼬마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가수님?”
흠칫 놀라서 앵콜을 연호하는 관객들을 바라봤다. 경력이 쌓인 만큼 잠깐 얼이 빠지긴 했어도 프로페셔널하게 멘트도 하고 앵콜 송으로 ‘birth’를 완벽하게 불러주고 인파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뒤늦게 알고 찾아온 팬들로 복잡해질 뻔했지만 몰래 숨어있던 경호원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원아, 작업실로 돌아가면 될까?”
“아니요, 잠시만요.”
왜 자꾸만 그 꼬마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합리적인 이유도 없건만 나는 그 꼬마에게 끌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 의문을 풀려면 다시 돌아가서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의 나는 기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강한 충동이 생기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이유가 비현실적이라 해도.
“잠깐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있으니 괜찮아.”
나는 차에 준비된 후드로 갈아입고 다른 색의 모자를 썼다. 마스크까지 끼면 티가 날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가기로 했다.
병원 로비에 도착했을 땐 음악회가 끝나고 관객들이 떠나서 한산해진 후였다. 빨리 돌아온다고 서둘렀지만, 심장을 울리는 눈빛을 가진 꼬마가 사라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
별일 아니었다고 넘겨버려도 될 일인데 쉬이 단념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아다닐 순 없었다. 다시 차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착잡하게 돌아서려던 차에 가느다란 손가락이 어깨를 두드렸다.
톡톡.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내가 찾던 꼬마가 있었다. 형 손을 꼭 잡은 채로.
꼬마는 나를 똑바로 보면서 뾰로통한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극적인 변화가 나 때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제 동생이 형한테 안기고 싶은가 봐요.”
제 형 손도 놓고 두 팔을 끈질기게 뻗는 모양이 안아줄 때까지 기다릴 기세였다.
뭘 믿고 낯선 사람에게 동생을 안겨주나 싶었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기묘한 분위기를 두르고 내게 충고를 해주기도 했던 아역 배우였다.
“제가 말했었죠? 인과는 언제든 다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고.”
이 꼬마가 현오 형을 위해 작곡했던 ‘어떤 이름으로도’를 듣고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
처음 보는 나를 이유도 없이 좋아해 주는 것.
소년이 하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내 품에 안긴 뜨거운 체온이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