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69
569화
終章 외전(유럽 편 끝)
낭트 성이 영국군의 야습에 함락되던 날. 골목을 통해 탈출하려던 루이 9세 일행을 발견한 한 영국군 병사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날의 소란 속에서 영국 병사를 쓰러뜨린 뒤 옷을 뺏어 입고 도주하던 도둑 ‘징’이었다.
징은 낭트에서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며 잡일을 하거나 소매치기 등을 하는 작은 도둑이었는데, 낭트 성이 함락되던 날, 빈민가에 불을 지르던 영국군 병사에게 어머니도 죽임을 당하면서, 더 이상 낭트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려고 하였다.
그러던 도중 골목에서 루이 9세를 본 것이었다. 이때 징은 영국군에게 루이 9세를 팔 수 있었다. 영국군이 얼마나 루이를 찾는지 아는 만큼 돌아올 대가는 분명 적지 않았다.
영국 병사를 습격하고 옷을 뺏은 일로 상이 아닌 벌이 돌아올 것이 두려웠다고 해도 징이 제 안전만을 생각했다면 루이 9세가 있는 곳을 알리면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폐하. 저는 폐하의 백성입니다. 성 밖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하지만 징은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고, 루이 9세를 돕기로 선택한 것이다. 루이도 주변에서 영국 병사의 옷을 한 징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가운데에서도 그 말을 믿었고, 징의 도움으로 루이 일행들은 성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징은 모두의 앞에서 자신이 도둑이었으며, 어쩌다가 영국 병사의 옷을 입었는지 전부 밝히며 회개하였고, 루이가 직접 용서를 해주며 일행으로 받아주고 함께 남행했다.
그리고 본래 민간인이었던 징의 합류는 루이 일행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남방을 가면서 그리고, 톨루즈 지방에 와서도 영주들이 영국군을 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한 된 루이 일행들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우선 현지를 조사하려 했다.
이때 일행 중 유일하게 빈민 출신에, 민간인이었던 징은 루이 일행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평시라면 별 볼 일 없는 재주나 능력도 지금의 루이에게는 둘도 없이 적절한 인재였으니, 목숨을 걸고 혼자서 피난민을 연기하여 도시나 마을로 들어가 현지의 상황과 민심을 조사하고 나왔다.
그것은 가히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맹상군(孟嘗君)이 진나라를 탈출할 때, 호피를 훔치고,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맹상군이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식객들과 비교해도 될 공적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고 온 냉혹한 현실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패전과 병으로 지친 루이 9세에 좌절을 안겨다 준 것이다.
“폐하. 그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징은 다시금 왕을 깨웠다.
“폐하께서는 스스로의 약하다고 말씀하셨지만, 폐하의 선정에 구원을 받은 자들이 있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빈민가에서 환자였지만, 폐하의 수발로 둘도 없는 영광을 경험하고, 죽는 그날 아침까지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폐하는 그런 제 어머니의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폐하를 살리고자 장렬히 나선 그날의 기사들과 환자들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징.”
어떠한 지위도, 고귀한 출생도 아닌, 밑바닥 빈민가에서 태어난 징이었기에, 그 말은 그 어떤 귀족들이나 기사의 말보다 통렬하면서도 강렬한 말이었다. 루이 9세가 징의 말에 주저하자, 이번에는 루이의 친구이자 집사 장 드 조안빌이 입을 열었다.
* * *
“제아무리 많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다고 하더라도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법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약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
“…장.”
왕에게 명령형으로 말하는 조안빌의 언행을 두고 무례하다고 꾸짖는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기군망상을 노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옛날 그 로마조차도 카르타고의 한니발에게 몇 번이고 패하여 위기에 몰렸지만 결국 자마에서 한니발을 꺾고, 이후로도 많은 일을 겪은 후 위대한 로마가 생겨났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인가.”
“그렇습니다. 싸우고 이기고 지는 일은 늘 있는 일입니다. 십자군이 이교도들에게 패할 때도 있으나, 그것이 성전을 멈출 이유가 되었습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시련 끝에 고통을 겪었으나 폐하께서는 아직 살아계시며, 폐하를 믿고 기다리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녕 저 많은 백성들을 타타르인들과 그런 이민족에게 붙은 잉글랜드 놈들 밑에 고통받을 미래를 두고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주변의 모두가 루이 9세에게 포기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시선을 보냈고 본래부터 성정이 굳센 루이 9세였기에 그들의 염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아직 포기해서는 안 되지. 지금 사태가 막막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이때 잠자코 있던 울리히도 입을 열었다.
“폐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대한 남부 병력을 동원한다는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지금, 다시 브르타뉴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소문대로 이미 점령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브르타뉴가 버티고 있을지도 의심스럽고, 그전에 다시 푸아티에를 지나고, 잉글랜드군을 피해 브르타뉴에 당도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우선 이제 사태가 단기적으로 도모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 내에서 해결할 수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프랑스 밖으로 가서 성전(聖戰)을 도모할 대군을 모아 이곳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이베리아로 가란 말인가?”
“아닙니다. 여기서 이베리아는 아키텐 근방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곳은 잉글랜드가 관리한 지 오래라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서쪽보다는 여기서 멀지 않은 교황청으로 가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동남쪽에는 지금 타타르에게 나라를 멸망 당해 피난 온 귀족들과 기사들이 많이 몰려있습니다. 그들을 규합하고 교황청을 설득한다면 분명, 교황청에서도 성전을 위한 십자군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 상황에선 여러모로 교황청 말고는 갈 곳이 없었던 루이 9세는 울리히의 제안대로 교황청으로 방향을 돌렸다. 성왕(聖王) 루이 9세는 그렇게 헨리 3세의 관심과 프랑스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교황청으로 간 루이 9세가 그곳에서도 우여곡절의 일로 십자군을 모으기 위해 분열된 동로마 제국들의 협력을 받기 위해 발칸반도로 가게 되고, 지금 이상의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나, 그것은 지금의 그들로선 아직 모르는 미래의 일들이었다.
* * *
바그다드.
“저 몽고의 추장 놈이 드디어 돌아가는 중이라고? 옳다구나!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왔어! 하하하!!!”
아바스 왕조 제37대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몽골의 칸(구유크)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간다 보고를 듣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몽골이 서정 중 먹을 식량을 팔면서도 틈틈이 반격의 기회를 엿보던 알 무스타심은 몇 번이고 몽골의 강력함과, 예상보다 많은 대군. 그리고 그만한 대군을 이끌고 이렇게 오랫동안 원정을 할 수 있는 재화와 공급력에 전율했다.
“하지만 그런 놈들도 이제 돌아가는구나. 암! 그 녀석들도 사람인 이상 천년만년 전쟁은 할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알 무스타심이 구유크의 회군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교황청이나 유럽보다 훨씬 늦어서, 그들이 알게 된 것은 구유크가 실크로드를 통해 회군 중이었다.
이걸 두고 아바스 왕조의 정보수집 능력이 모자라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구유크가 회군을 마음먹은 시점에 이미 은폐는 만전에 기했기 때문이다.
교황청에 회군할 것이라는 답장을 보낸 순간 바로 동쪽으로 회군을 시작했는데, 고려의 영녕공 일행조차 구유크의 회군을 알게 된 것은 회군하는 당일이 돼서였다.
물론, 영녕공 일행도 주변의 분위기로 몽골이 어수선하다는 것은 간파했으나, 그 이상으로 자신들이 경계 받고 있는 것도 알았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이 있던 영녕공 일행도 이러할 진데, 유럽과도 다소 거리가 있었던 아바스 왕조가 회군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유럽을 오가는 상인들과 접한 중동 상인들이 바그다드에 오고 나서였으니 몽골의 정보 은폐와 행동력이 매우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회군을 숨긴 것은 명백해서, 역으로 수상하군.”
구유크는 고려에게 회군 사실을 최대한 은폐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알 무스타심은 그저 몽골이 은폐하려 했다는 것만 직감한 것이다. 여기서 이 빈틈이 있는 정보와 직감 속에서 오해가 일어났다.
“저놈들은 우리가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서 회군 도중 칠 것을 경계해서인가?”
선대 칼리파 시절부터 언젠가 몽골과 싸우겠다고 벼르던 알 무스타심이었기에,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짐작하여 몰래 회군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여태까지 몽골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확인한 알 무스타심은 이 오해 속에서 나름 합당한 대응을 했다.
“지금이라도 군대를 모아 칸의 뒤를 치면 되겠습니까?”
“아니, 이미 경계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은폐만 했다고 보긴 힘들다. 분명 조치를 했겠지. 그리고 너무나 빠르게 동양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수상하군. 동방에 무슨 일이 있는지 조사하고, 회군 중인 병력의 규모도 확인해라.”
신중히 대응하는 알 무스타심의 선택은 선대 칼리파 시절, 몽골 사신의 무례함을 보고 난 후 아버지께 바로 몽골을 치자고 건의했을 때와 비교하면 괄목(刮目)할 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눈앞에서 아이톨리아 반도에서 한껏 세를 떨치던 룸 셀주크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나아가 유럽의 나라들도 전쟁만 했다 하면 연전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는데도, 신중함을 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알겠나. 저놈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다! 인간이 악마를 잡기 위해선 신의 가호와 함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저들의 칸을 잡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가? 너도 신성로마의 이야기는 들었겠지?
로마 황제가 독주를 선물하여 칸과 그 아들을 죽이자, 몽고 놈들은 보복으로 신성로마 전부를 불태우고, 로마인들을 모조리 불로 태워 저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저 악마들의 군대 그 자체를 전멸시켜야 하는 것이다.”
신성로마의 일은 소문을 거칠수록 점점 더 와전되었지만 그것을 지적할 자는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저 몽고 놈들이 호라즘과 셀주크(룸 셀주크)를 도륙 내는 악행으로, 이제 모든 알라의 숭배자들도 저 악마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고로, 나는, 아니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무슬림들을 소집하여 저 악마들을 소탕하는 성전(聖戰)의 준비할 것이다!”
성전을 위해 루이 9세가 교황청으로 가고 있을 때, 알 무스타심도 바그다드에서 몽골에 대한 성전을 부르짖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우연이면서도 그만큼 몽골에 대한 위협을 양쪽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다음은 몽골 파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