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2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후일담 13화
용과 함께 춤을 (3)
에키드나와 함께 공연이 치러지는 호주로 이동한 강우는 동선과 춤을 간단하게 배운 후 바로 리허설에 들어갔다.
“누구든 시선을 빼앗기는~ 넌 완벽한 궁극의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에키드나를 따라 양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고 귀엽게 윙크를 날리는 등 완벽하게 안무를 수행하는 강우.
강우가 변장할 아리라는 아이돌도 꽤나 유명한 아이돌이라서 그런지 에키드나 못지않게 비중이 높았다.
춤은 꽤 복잡했고, 노래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동선은 그 이상으로 난해했지만.
“와, 완벽해 강우!”
“…그래,”
“강우도 이번 기회에 진짜 아이돌이 되는 건 어때?”
“…싫어.”
플레이어 사이에서 ‘무신’이라 불리는 김시훈에 비해서는 좀 꿀리는 감이 있지만.
순수한 무인으로서의 경지도 절정을 넘어선 강우에게 아이돌의 춤과 동선을 익히는 건 몸풀기용 체조를 익히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래.
익히는 건 쉬웠고, 따라 하는 것도 문제 되지 않았지만.
“하아…. 씨이벌….”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드는 미칠듯한 자괴감.
귀엽고 깜찍한 스타일의 노래에 맞게 당장에라도 요술봉을 꺼내 레이저포를 쏴댈 것만 같은 마법 소녀 스타일의 복장을 입은 강우는 무대 뒤편에 마련된 대기실에 앉아 쓰디쓴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비단처럼 윤기가 흐르는 흑발에, 에키드나 못지않은 귀여운 외모를 지닌 소녀가 거울에 비쳐 있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어젯밤 사고를 당했다는 아이돌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변형의 권능’을 사용한 강우 본인의 눈에는 소녀의 껍데기 안에 피로에 절어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겹쳐 보이고 있었다.
“인생… X발.”
평소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한 번도 피워본 적 없는 담배가 몹시 땡겼다.
“강우! 아이돌이 그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안 돼!”
에키드나가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강우에게 호통쳤다.
“자, 나 봐봐! 이렇게! 두 다리 모으고! 허리 꼿꼿이 펴고!”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대답은 한 번만! 그리고 좀 더 활기차고 명랑한 목소리로!”
“…담배 피고 싶다.”
“아, 아이돌은 그런 거 피면 안 돼!”
“…술 마시고 싶다.”
“술도 안 돼!”
뭐 시벌 다 안 된데.
아이돌은 사람도 아니야? 어?
“아이돌은 모두의 우상 같은 존재라고!”
“아직 스물도 안 됐을 것 같은 꼬맹이들한테 이런 짧은 치마 입혀 놓고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시키면서 지들은 지키지도 못할 높은 잣대의 도덕적 행동을 강요하는데 ‘모두의 우상’이라….”
“허, 허억!”
“술, 담배는 물론 연애도 당연히 금지겠고. 하루 밤낮없는 스케줄에 못하면 못한다고 지랄, 잘하면 열패감과 열등감에 찌든 악의를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직업에 과연 ‘우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가, 강우! 어두워졌어! 너무 어두워졌어!”
DC 유니버스처럼!
“하아. 그래… 이런 악조건에도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애들이 끊이질 않는 이유가 있겠지, 뭐.”
“강우는… 내가 아이돌 일 하는 거 싫어?”
“아니, 그건 아니야.”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받는 거지 같은 직업이지만.
그렇기에만 얻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이 존재한다.
그리고 에키드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사랑과 관심이었고.
“네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만살 넘게 처먹고 여장 아이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해. 네가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강우는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히 웃었다.
에키드나는 강아지처럼 강우의 손에 뺨을 비비며 배시시 미소지었다.
“헤헤… 좋다.”
“뭐가?”
“이렇게 강우랑 단둘이 있는 건 엄청 오랜만이잖아?”
“아… 뭐, 오랜만이긴 하지.”
강현이와 강희, 릴리아가 태어난 이후로는 육아에 정신을 쏟느라 상대적으로 에키드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에키드나도 인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각종 예능이나 유튜브 촬영이 겹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졌고.
만약 짬이 나서 만난다고 해도 단둘이 만나기보다 설아나 다른 애들을 껴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강우는… 나 안 보고 싶었어?”
어딘가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올려다보는 에키드나.
“왜 안 보고 싶었겠어?”
“치이. 요즘엔 연락도 자주 안 해줬으면서.”
“그, 그건….”
“흐흥. 농담이야.”
강우가 많이 바쁘다는 건 에키드나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강우랑 단둘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서 좋아.”
“이런 모습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왜! 귀엽잖아!”
“그래서 문제라고.”
강우는 오늘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에키드나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 자주 연락 못 해줘서.”
“…강우.”
에키드나가 강아지처럼 강우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입을 열었다.
“강우. 사실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밖에서 스태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2차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아, 어서 가자 강우!”
“끄윽… 아니 한 번 했으면 됐지 뭘 2차 리허설까지….”
“흐응! 연습은 중요한 거라구!”
강우는 에키드나의 손에 이끌려 질질 무대로 끌려나갔다.
* * *
공연 당일.
5만 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내지르는 우렁찬 함성에 맞춰 강우는 무대 위에 섰다.
“모두~ 와줘서 고마워! Thank you all for coming!”
에키드나가 환한 미소와 함께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층 더 커진 함성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확 전해져왔다.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한 에키드나가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 모양으로 ‘강우도 어서 인사해’라고 말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강우는 에키드나가 알려준 대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윙크했다.
“에키드나만 좋아하지 말고 아리도 사랑해 달라구♥”
아.
죽고 싶다.
“아아앙~ 소리가 이것밖에 안 돼? 더 크게에~♥”
그냥… 그, 뭐냐.
죽고 싶다.
“자, 오늘 첫 곡 시작할게! 다 같이 따라 불러줘!”
에키드나의 외침과 함께 터질듯한 사운드가 드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인이어를 통해 MR에 따라 노래를 시작하는 에키드나.
강우 또한 어제 익힌 대로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깜찍… 아니, 끔찍하기 그지없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이거.’
리허설 때도 밀려오는 자괴감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렇게 관중 앞에 나서서 춤을 추니 비교할 수 없는 수치심과 자괴감이 숨통을 옥죄여왔다.
“최고다아아아아! 에키드나 짜아아앙!”
사방에서 들려오는 에키드나의 이름.
‘아니 근데 여기 호주 아니었어?’
덕질에 국경은 없다고 하지만, 이건 호주가 아니라 무슨 옆 동네 섬나라에 와서 공연하는 기분이었다.
“아리! 아리! 아리!”
“와아아아아! 둘 다 너무 사랑해!”
자신이 변신해 있는 아이돌 또한 그냥 에키드나의 들러리 역할로 합동 공연을 하는 건 아닌지 여기저기에서 이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저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혼을 담아 부르짖는 아이돌 안에는 다리털 숭숭 난(실제로는 별로 없다) 사내새끼가 들어가 있다는 걸.
‘제발 빨리 좀 끝나라.’
이 지옥 같은 시간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어제 익힌 대로 춤을 추고 있자니.
“영원히! 사랑해! 영원히! 함께해!”
“에키·아리! 에키·아리! 에키·아리!”
관중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터질듯한 환호성.
번쩍이는 조명과 코끝을 자극하는 시큼한 땀 냄새.
피부로도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과 열기.
‘…어?’
뭔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뭐야 이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
시끄러운 소음처럼 느껴지던 환호성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되어 등골을 타고 퍼졌다.
‘뭔데 이거.’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몸이 리듬과 환호성을 타고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이렇게 다수의 사람에게 열렬한 환호성과 뜨겁게 달아오른 눈빛을 받아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숱하게 있던 일이었다.
마왕으로서 구천지옥에 군림했을 때도.
광휘교의 신으로서 추앙받을 때도.
이런 귀가 먹을 듯한 함성과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왔으니까.
하지만.
‘뭔가… 달라.’
똑같은 함성과 눈빛이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전과는 달랐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에키드나식으로 표현하면….
‘사랑.’
그래.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서는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다.
지옥의 악마들이 보내왔던 공포와는 다른.
광휘교의 신도들이 보내왔던 선망과는 다른.
강우로서도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의 해일.
실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건 두 명밖에 되지 않지만, 마치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무대 위에서 뛰노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왜 에키드나가 장난삼아 시작했던 아이돌 일에 진심이 됐는지.
외로움과 고독에 점철되어 있던 그녀가 어째서 그리 환히 웃을 수 있게 됐는지.
‘아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에키드나.’
끓어오르던 자괴감이 눈이 녹듯 스르륵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은 ‘가짜’에 불과했지만.
관중들이 보내오는 사랑이 ‘진짜’라면.
“모두우우우우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아이돌’이다.
“사랑해에에에에♥”
* * *
“흐응! 수고 많았어, 강우! 그렇게 싫다 싫다 하더니 팬서비스도 엄청났잖아! 역시 강우에게는 아이돌의 재능이… 응?”
어찌저찌 성황리에 끝나게 된 공연.
강우는 대기실 구석에 찌그러진 채 영혼을 잃은 눈으로 무언가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내가 왜 그랬던 거지? 왜 그딴 미친 짓을 한 거지?”
“강우?”
“아, 아냐! 내가 원해서 그랬던 게 아니야! 나, 나는… 나는 그저….”
“왜 그래?”
“분위기! 그래, 분위기에 취했을 뿐이야! 절대, 절대 즐긴 게 아니라고!”
“강우!”
찰싹!
에키드나가 강우의 뺨을 가볍게 쳤다.
“아까부터 왜 그래?”
“…….”
“흐흥! 그렇게 쭈그려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
에키드나의 손에 이끌려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강우.
그녀는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처음으로 공연을 해본 기분은 어땠어?”
“…기분이 어땠냐고?”
“응! 엄청 즐거웠지?”
아아.
그래.
즐거웠지.
즐거우면 안 됐는데 말이야.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래.”
강우는 프릴이 가득 달린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쥐어짜듯 말을 이었다.
“들어오면 안 되는 구멍에 무언가 들어왔는데… 근데 그게 생각보다 기분 좋은… 그래, 딱 그런 느낌이야….”
“강우 말, 잘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