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2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46화
46. 무한의 굴레
“죽여!”
“이런 썅!”
피 튀기는 난전이 벌어졌다.
수백 명의 인간과 수천 마리 고블린의 싸움.
아르타로스는 인간으로 격하된 신들의 싸움을 하늘에서 느긋하게 내려다봤다.
사실 안내역으로 뽑혀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게 아니었다면 자신도 저 초원에서 고블린들과 뒹굴었을지 모르니.
물론 아르타로스로선 죽음이 곧 포상이었지만 저렇게까지 고통을 느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죽어봤자 첫 라운드부터 다시 시작될 뿐인 고통의 굴레라니…. 안내역으로 지켜보는 게 천만다행이군요.’
그나저나 게임이 슬슬 루즈해지고 있다.
고블린의 수가 인간과 비슷해진 탓이다.
아르타로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시체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고블린이 추가되었다.
“또 오잖아!?”
“아르타로스! 너 정말 이러기야?”
치열한 혈전 끝에 500명 남짓하던 신족 중 250명만 살아남았다.
물론 고블린에게 죽은 숫자가 그랬을 뿐, 정산 시간은 따로 가져야 했다.
“자, 잠깐만 아르타로스! 나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되거든?”
“아, 안 돼! 타르타로스는 싫…!”
250명 중 미달성자 90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1라운드를 통과한 사람은 고작해야 160명이었다.
그중 가이아와 카오스, 플루닉토스는 구역 순위 1, 2, 3위를 차지했고.
* * *
“가이아. 다음 라운드 미션은 뭐지?”
“투표를 통해 구역대표를 정하는 라운드예요.”
“구역대표? 그게 뭔데?”
가이아는 대기하는 동안 신족들에게 설명했다.
이 중에서 라운드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설계자인 가이아뿐이었다.
초원에 있던 신족들은 숲에 둘러싸인 공터로 이동되었다.
아르타로스가 나타나 어김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가이아의 설명대로였다.
아르타로스가 사라지자, 카오스가 가이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 이제 말해봐. 2라운드 공략법은 뭔지.”
“가이아 님. 정말로 투표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나요?”
“함정은 아닌 거죠? 뭔가 숨겨진 퀘스트 같은 건 없는 거죠?”
모두가 궁금해하며 묻자, 가이아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모두 제 말 잘 들으세요. 이번 라운드는 쉬어가는 라운드가 아니에요. 투표보다는 저 숲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아야 하죠. 10레벨을 만들어서 전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오오. 역시 가이아 님!”
“가이아 님만 믿겠습니다!”
아르타로스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를 가이아는 알고 있었다.
이 점은 플레이어가 된 신족들에게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가이아를 맹신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투표할 때도 가이아가 1등을 차지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가이아였으나 그리 기쁜 얼굴은 아니었다.
160명 중 대다수가 10레벨을 찍고 직업을 가졌다.
전직한 사람에겐 쓸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통솔권은 당장으로선 무용지물이었다.
‘이러면 구역대표가 된 의미가 없어지지만 이게 최선이야. 멍청한 인간들처럼 서로 경쟁하면서 공략하기보다는 상생해서 나아가는 게 생존에 더 유리하지.’
가이아의 판단은 옳았다.
비록 구역대표의 이점은 챙기지 못했으나, 모두가 직업을 가진 덕에 3라운드의 유물을 쉽게 지킬 수 있었다.
다치는 사람도 적었고.
‘3라운드 유물이 깨지면 페널티로 천벌의 대행자가 나타나. 그놈만큼은 절대로 못 잡아.’
검은 낫, 그 녀석이 특출났을 뿐, 특별한 룬도 없는 우리로선 천벌의 대행자를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르타로스가 사라지자 4분의 1로 줄은 40명의 생존자는 일제히 가이아를 돌아봤다.
“4라운드?”
“4라운드가 뭔데 그래요? 가이아 님?”
가이아가 씁쓸히 말했다.
“…서로를 죽이는 미션이에요.”
* * *
4라운드 퀘스트는 가이아의 예언대로였고, 참가자들은 서로를 난감한 얼굴로 바라봤다.
“3시간 동안 서로를 죽이라니…….”
“다른 숨겨진 룰은 없나요?”
“가이아 님. 어떻게 해야 순위권에 들 수 있죠?”
“그냥 서로 죽이기만 하면 되나요?”
“죽으면 바로 타르타로스로 이동되는 거 아닌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가이아는 침착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4라운드에 숨겨진 룰을.
“걱정 말아요. 서로를 죽여도 10분이 지나면 부활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아… 정말입니까?”
“부활한다면… 마음껏 죽여도 되겠는데?”
“그럼 최대한 많이 죽인 자가 1등이 되는 건가요?”
가이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하죠.”
솔직하게 말하는 듯 보였으나 아니었다.
가이아는 살아남기 위해 이번만큼은 다 털어놓지 않았다.
‘많이 죽여야 하긴 하지. 최대한 여러 사람을 죽여야 하지만.’
이 사실만큼은 밝힐 수 없었다.
괜히 알려줬다가 순위권에 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죄, 죄송합니다. 죽어주세요!”
“끄아악! 아, 아프잖아!!”
“이 새끼가 죽으려고!”
처음엔 어색하게 싸우던 신족들이 죽으라고 서로를 향해 칼질을 해댔다.
고귀한 척하던 모습이라곤 온데간데없는 꼴이 하찮게 여기던 인간과 그리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푸욱! 푹!
가이아 또한 살기 위해 함께 올라온 동료들을 찔렀다.
그 목록엔 자신의 남편 또한 있었다.
푸욱!
“허어억! 누, 누가 등을…….”
“미안해요. 카오스. 나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요?”
“가, 가이아 이 썅X이…….”
그러나 설계자인 가이아도 예상치 못한 점이 있었다.
자신의 뒤 역시 누군가 칠 거라는 점을.
푹! 푹!
“가이아 이 개 같은 년! 죽어어어!”
충신이었던 루브아히가 뺨 맞은 일에 대한 보복을 칼침으로 되돌려주었다.
10분 뒤에 부활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썅X이 감히 날 뒤통수 쳐?”
부활한 가이아는 이번엔 카오스에 의해 다시 죽어야 했다.
결국 가이아를 비롯한 절반의 신족들은 4라운드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 * *
“허억!”
“흐읍! 여긴…?”
메케한 유황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
영혼들을 구속하는 감옥인, 명계 아래의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였다.
이제는 생존게임에서 실패한 자들이 고문받으러 오는 장소로 변질해 버렸지만.
“내, 내가 여길 오다니….”
“게임에서 진 거야? 우리?”
“빌어먹을, 빌어먹을!”
4라운드에서 탈락한 20명이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엔 가이아도 끼어 있었다.
‘모든 라운드를 다 아는 내가 고작 4라운드에서 탈락하다니!’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탈락하고 말았다.
자신이 부리던 검은 낫은 그토록 쉽게 깼는데도 말이다.
‘직업이 구려서 그래. 직업이!’
자신도 유일 클래스를 얻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이 게임을 기획한 검은 낫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일반 클래스만 얻을 수 있을 뿐이야. 룬도 일부러 X나 구린 것만 쥐여줬고.’
이제 와서 불평해 봐야 소용없다.
어쨌거나 그들은 타르타로스라는 거대한 고문실에 들어서게 되었고 형벌을 받을 죄수에 불과했다.
딱!
플루톤이 손가락을 튕기자 절그럭거리는 사슬이 나타나 모든 사람을 줄줄이 소시지처럼 묶었다.
강제로 연행되던 20명의 신족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다른 고문실에 있는 신족들을 바라봤다.
찰싹!
“끄으으!”
화르륵!
“꺄아악!”
신족을 거꾸로 매달아 채찍질하는 모습이며, 산 채로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모습까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잔혹한 광경에 신족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조금 있으면 자신들이 저런 꼴을 당하게 될 테니까.
약간 비좁은 감옥 안으로 신족들을 집어넣은 간수장이 문을 잠갔다.
철커덕!
“죽음의… 꼬챙이?”
간수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간수들이 몰려왔다.
그들 손엔 하나같이 쇠꼬챙이가 들려 있었다.
푹푹! 푹푹! 푹!
“아아악!”
“아, 아악!”
신족들은 꼬챙이에 팔다리가 꿰이며 고통을 느꼈다.
비좁은 철창 안에서 꼬챙이를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댔으나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푹! 푹! 푹!
“아아악!”
“흐아아아!”
죽음의 꼬챙이라 불리는 고문은 장장 6시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 * *
“으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가이아는 순간 변해버린 환경에 눈을 크게 떴다.
‘여, 여긴… 초원?’
1라운드의 그 초원이었으나, 가이아는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고문을 당했는지.
몇 라운드에서 떨어졌고 어쩌다 실패했는지.
여기 있는 카오스와 다른 신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기억의 상실을 겪었다.
그들에겐 지금이 첫 경험이자 첫 라운드였다.
고통이 반복되는 무한의 굴레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내, 내가 버러지 같은 인간이 되다니.”
“이럴 순 없어……!”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며 절망하는 그때.
안내역인 아르타로스가 나타났다.
“가이아?”
“나를?”
지목당한 가이아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어디로 간다는 거야?”
‘검은 낫이?’
인간으로 격하되어 게임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지만 가이아는 조금 희망을 보았다.
‘게임을 기획한 검은 낫이 나를 찾는다?’
그 말은 검은 낫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
가이아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협력해 주는 대가로 나 역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 거야.’
검은 낫에게 뭘 요구해 볼까?
자신을 풀어달라고 해볼까?
아니면 다시 신으로 격상시켜달라고 해볼까?
‘뭐가 됐던 놈에겐 속마음의 룬이 있으니 경거망동해선 안 돼. 마음을 읽지 못하게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겠어.’
인간으로 변했으니, 속마음의 룬이 통할지도 모르는 법.
그런 가정하에 잠깐 생존게임에서 이탈한 가이아는 검은 낫과 대면하게 되었다.
무심하던 가이아의 표정에 철판이 씌워졌다.
“검은 낫! 정말 오랜만이에요.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지랄 맞은 연극은 됐고, 너는 잠깐 나와 함께해야겠다.”
“설마 저를 풀어준다는…….”
“네 권능이 필요해서 잠깐 빌려 가는 것뿐이니까 좋아할 것 없어.”
“권능…?”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가이아의 혼이 사라졌다.
영혼의 건틀릿 안으로.
* * *
류민은 류승호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아들이 무탈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러려면 창조의 권능이 필요했다.
‘그래서 잠깐 가이아를 빌린 거지.’
가이아를 영혼의 건틀릿에 다시 집어넣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권능을 이용해 류민은 아들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 냈다.
이른바 [류승호 성장 시스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