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원수의 노후는 그리 평안하지 않다(6)
50년대 중반에 접어드니 세상이 확실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님을 체감한다.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태어나며 베이비붐 시대가 개막됐고 사회 문화가 군국주의, 민족주의를 탈피해 평화, 자유, 평등 같은 감미로운 단어에 홀려버렸다.
군사력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무제한 찍어냈던 달러와 프랑의 씨앗들이 하나둘씩 발아하며 독립국들의 성장 가도를 돕는다.
우크라이나가 단독으로 구 러시아제국 농업 수출량을 추월하고, 전후 재건에 성공한 아시아 시장이 매년 10%씩 성장한다.
중동에 막 생겨난 국가들이 토호, 부족을 끌어모아 왕정통치를 시작했고 그 기반은 석탄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석유였다.
1908년 페르시아 유전을 시작으로 27년 이라크 유전, 38년 사우디-쿠웨이트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55년 현재. 중동은 누가 봐도 사막 전체가 기름이 나오는 미친 땅이 되었다.
여전히 멕시코, 루마니아같이 기름 복권으로 기대받는 나라들도 있으나 중동은 달랐다. 그냥 아무 데나 삽 들고 파서 빨대를 꽂으면 기름이 나온다.
뿜어져 나오는 기름에 헐레벌떡 프랑스 자본이 자리 잡고 오늘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 악화를 비난하며 중동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버지, 알고 계셨습니까?
“흠흠, 나라고 알았나. 난 원래 이슬람 친구들을 좋아했어!”
“…그러셨겠죠.”
이로써 세계 석유의 절반을 생산하던 미국의 마지막 압박 수단마저 우린 극복했다.
이대로 한 20년은 지속될 끝없는 호황과 평화를 이 시골에서 지켜보며 눈 감으면 될 거 같다.
“캬아, 이게 내가 이번에 장만한 머슬카!”
젊은이들은 알앤비를 듣고 정통 블루스와 스윙재즈가 길거리를 채우는 시대.
가죽 자켓과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오토바이 하나만 탄 채 큰 도로를 질주하는 그런 시기.
나도 위엄 넘치는 원수 생활은 진작에 청산했기에 새로운 문화 속에 뛰어들어 살아가겠다 다짐했-
“…안 들려.”
“와.”
분명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곳간과 민심이 채워지고 모두가 사랑, 소망, 믿음 아무튼 그런 미래 희망적인 단어들로 심신이 안정된 거 아니었나.
왜,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 저 미대륙 잡종들은 지들 혼자 시뻘게지고 있는 거지?
“그니까 그걸 왜 나한테 징징거리나.”
루스벨트가 전시에 저소득층, 빈민, 노동자, 소수인종을 끌어들여 언더도그마들을 통합 흡수했다면 우리 맥통령의 지지 기반은 조금 달랐다.
96년부터 32년까지 오랜 기간 미국을 장기 집권했던 그 세력. 공화당 이전의 휘그당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 보수 세력.
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쩌면 이 모헬과 비견될 콘크리트 지지층이 바로 맥아더의 백인 인종, 기독교 도덕, 전통 보수주의자들을 결합한 세력. 진보라는 이름 아래에 활동하는 수정주의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역사를 가진 이들이다.
“축하하네, 내 보니까 자네 재선은 확정이야.”
“…우리냐.”
아, 그냥 적당히 너희 텃밭인 남미에서 놀면 안 되니. 왜 꼭 남의 동네 그네를 타야 만족하려는 거야. 우리 좀 봐. 수백 년 만에 탄생한 유럽 패권국치고 아주 조용히 살잖아?
“무슨 욕구 조절 못 하는 애새끼도 아니고 꼭 휘두르려 하는가. 그냥 자네가 적당히 완급 조절-”
대충 그림은 그려진다. 최근 들어온 소식까지 접해보면 이건 하층민들의 혁명 같은 게 아닌 본래 기득권과 미국의 근본 세력들이 일으키는 반발이다.
‘뻔하지. 저 뒤에 기업, 정치인, 미시간 디트로이트 공장 주인부터 오리건 농장 주인까지 들고일어선 거야.’
이걸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쨌든 국익을 외치고 먼로주의 따위 흑역사로 취급하는 적극성을 보이긴 하나 글쎄.
“하아, 더글러스. 자네도 알지 않나. 전쟁은 끝났어. 제3의 세계에서 소소한 전투는 있을 수 있지. 아마 전쟁도 일어나고 우리가 참전해야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니까 전쟁으로 한 방으로 패권놀이나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그게 FDR과 내가 핵무기까지 끌어다가 못 박은 구도니까. 반공? 그건 강대국들의 규합 명분으로 전락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 나라 이념 싸움을 국외로 표출하지 말라고. 그거 유행 끝났으니까.”
이런 말도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게 우습지만, 최근 미국의 과격함. 분노조절 못 하는 미친개처럼 언제라도 외부로 힘자랑하려는 움직임은 명백히 내 눈에도 띄고 있다.
“그딴 거 하나 조절 못 한단 소리는 꺼내지도 말고.”
“왜….”
“그러든가.”
“자넨 진짜 개새끼군.”
이 자식은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지? 뻔히 FDR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충돌하지 않도록 몇 년간 섬세히 작업했는데 그걸 끊어지든 말든 자기 알 바 아니라는 소리를 해?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으나.
“…계획이 뭔데.”
군인이라 무식하다고 욕해야 하나 아니면 정치인답게 능구렁이 같다 해야 하나. 첫 대화부터 무작정 밀어붙이는 줄 알았는데 이놈은 어중간한 힘겨루기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청산하거나, 아니면 아예 임기 끝까지 방치하거나.’
백인 앵글로색슨 청교도 자식들이 어중간하게 유럽 우파의 맛을 보고 되도 않는 반공투사를 자처하고 있다니.
“의회에 가서 내가 뭐 하는데.”
“그래서.”
정말 이 자식은 날 뭘로 아는 걸까. 진짜 친우라고 생각하긴 할까?
그저 남의 나라 돌아가는 꼴이 우습다고 생각만 했는데 그 문제가 내 앞까지 올 줄은 몰랐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 이번 일만 끝나면 아예 국외로는 나가지도 말아야지.”
과연 내가 가서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만 일단 화려한 무대를 준비한다니 난 별수 없이 또 한 번의 미국행을 준비했다.
***
“저 육군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미합중국군 안에도 빨갱이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 말입니다!”
“레이건! 레이건! 레이건!”
“메카시! 메카시! 메카시!”
나도 꽤나 감명 깊게 봤던 영화계의 거장 찰리 채플린도 이 땅에서는 빨갱이 취급을 받는다니. 도대체 뭐가 자유의 나라인지 모르겠네.
확실히 오랜만에 찾아온 미국은 확실히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니었다.
“하긴, 동성애도 사형 집행하던 나란데. 안 그런가, 빅터?”
“유색인종도 빨갱이. 노조도 빨갱이. 동성애자도 빨갱이. 이젠 군대까지 빨갱이라더군요.”
전화로 들었던 음흉한 목소리에서 예상은 했다만 맥통령은 화려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내가 온다는 소식을 떠벌리고 다녔다.
최근의 사태와 때 아닌 위기론, 그리고 오랜만에 권력을 맛본 공화당의 폭주까지 더해져 작금의 미국은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순수한 환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시선들은 내게 옛날 항수를 느끼게 해준다.
‘딱 나치가 이랬지.’
후버가 간첩혐의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지하실로 끌고가는 게 슈타지가 하던 짓이랑 판박이다.
만연하는 인종차별과 강대국의 힘에 취한 것도 유대인 혐오와 패전의 우울감을 폭발시킨 나치 총통이 하던 짓.
말이 위기 극복을 위한 권력 집중이지 사실상 기존 체제를 벗어나 개혁이란 이름 아래에 자기들이 권력을 잡고 싶은 쇼로밖에 안 보인다.
“루스벨트가 왜 고혈압과 뇌졸중을 앓았는지 알겠어. 벌써부터 한숨만 나오는구먼.”
더글러스가 준비해둔 차를 타고 난 곧장 의회로 직행했다. 우리 맥통령께서는 의전조차 기다릴 시간이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시위대인지 환영 인파인지 구분이 안 가는 민중들. 그들은 뭐가 억울하고 뭘 또 그리 많이 바라는지 목청 터져라 들리지도 않는 사안들을 내 뒤통수로 쏟아낸다.
아니나 다를까 의회에 진입하자마자 어느 나라 당대회를 방불케 하는 소음이 바깥처럼 똑같이 이어졌다.
“모헬 원수! 모헬 원수다!”
“각하의 방미를 적극 환영합니다!”
“독재자에게 의회 연설 기회를 주다니!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진단 말인가!”
언짢게 여기는 자들. 일면식도 없는 주제에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환호하는 이들.
팬과 안티. 빠와 까의 기운이 모두 느껴지는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 미 대통령께서 의회에 이리 출입해도 되나? 상원의장인 부통령만 가능하지 않나?”
“모헬 원수의 연설을 경청하고 싶어서 내 한달음에 달려왔지.”
“쯧, 확실히 꼴이 말이 아니긴 해. 통제조차 못 하는 대통령이라니, 한심하다 진짜.”
“그래, 그렇게 편히 하고 싶은 말 하시게. 자네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달라고.”
역시 공화당놈들은 후보부터 잘못 뽑았다. 아이젠하워였다면 대화와 중재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을 텐데 맥아더의 안중에 그딴 건 없었다.
‘어서 보여줘! 혼도온! 파괴에에! 망ㄱ-’
‘닥쳐.’
국내 조금 시끌벅적하다고 날 데려온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지만.
“모헬! 모헬! 모헬!”
“이 나라는 모헬 원수 각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더글러스! 더글러스! 더글러스!”
딱 하나 나도 동의하는 게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이름을 외치는 저 인간들. 음, 꼴 보기 싫긴 해.
그래도 꼴에 만인의 존경과 경외를 받는 원수. 연단에 올라선 난 최대한 유화적이고 순화된 단어들을 골라 좋아 보이는 가치들을 강조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그 어떤 이념과 사상도 우리의 전우애를 막을 순 없습니다.”
“혼자는 어렵지만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우린 언제나 함께할 것입니다.”
“핵 무기를 만들었음에도 쓰지 않은 그 도덕심. 저희는 완전한 지성과 이성을 장착한 최초의 국가들입니다.”
슬슬 준비한 좋은 문구들이 바닥을 드러낸다. 잠깐 좌중을 둘러보니 무언가 큰 거 온다고 잔뜩 홍보하던 맥아더도, 이에 기대하던 공화당 의원들도 그리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는 것 같다.
그나마 좌측에 앉은 민주당은 겨우 숨을 몰아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리 맥아더의 심기 불편한 시선과 함게 의례적인 박수가 내게 쏟아졌다.
연설을 그리 보잘 것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자리에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에 난 꽤나 감동받았다.
“자자, 자리에 앉으시지요.”
옆에 부통령이 슬쩍 눈길을 보내며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고 신호를 주지만 난 연단에서 내려가는 대신 의원들을 자리에 앉혔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
감동을 받았다면 응당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순간 고요할 정도로 침묵이 이어졌지만 난 그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해주겠단 의지를 우두커니 서 있음으로써 드러냈다.
첫 타자는 어느 눈치 빠른 의원이었다.
“모헬 원수님, 이 나라는 지금 빨갱이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거대한 전쟁으로 겨우 틀어막은 공산주의를 곰팡이처럼 키우고 있단 말입니다! 이 국가적 위기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증거가 있습니까.”
“그들의 명단이 지금 제 서류 가방에 있습니다!”
“아, 그래요? 줘 보세요.”
그럼 그 명단 들고 경찰서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은데, 일단 명단까지 있다니 난 손을 내밀며 그 서류를 요구했다.
“저, 그게 혹시나 명단이 공개되어 그들이 도망치거나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이….”
“에이, 설마. 더글러스, 내가 명단만 보고 넘겨주면 바로 조사 가능한가?”
“물론.”
“그렇다네요. 주세요.”
난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어서 가방을 열어 리스트를 주길 재촉했다.
자꾸만 우물쭈물 거리는 그의 태도에 난 순간 얼굴을 구겼다.
“뭐야, 없어?”
“아니, 있는데….”
“있으면 주라고.”
“…….”
“쯧, 거짓말이었나. 내란이라 일으키는 자로군.”
실제로 가방을 책상 위로 올려 찾는 시늉까지 하나 그는 끝내 내 손에 리스트를 건네지 못했다.
“다음, 질문.”
“최근 들어 이민자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인종 간의 차별은 반대하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점을 상호보완-”
“그러니까, 인종으로 나누겠다?”
첫 질문 이후 기분이 팍 상해버린 티를 내며 난 질문을 끝까지 듣는 대신 곧장 답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내 수백, 수천만이 죽는 전쟁을 두 번이나 해봤더니 하나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약간의 진중함. 그리고 가르침을 담아 난 참으로 놀라운 진실을 그들에게 말했다.
“피부가 벗겨지고 신체가 떨어져 나가면, 놀랍게도 모든 인종이 똑같은 붉은 색 피를 흘립니다. 세상에 푸른 피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많은 피를 목격한 제가 장담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굳이 확인 안 해봐도 여러분 몸속에는 빨간 피가 흐른답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었나. 다들 입을 못 다물고 있네. 설마 여기 계신 상류층분들은 동네에서 뛰놀다가 무릎 까진 경험 한 번 없는 귀한 몸들이신가.
이 많은 좌중에서 오직 맥아더만이 흐뭇하게 날 바라본다.
그로기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과 계속 질의응답을 하긴 무리가 있어 보이니, 난 딱 마지막 조언만 하고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존경하는 미 의회 의원 여러분.”
일단 영국 의회는 되던데 미 의회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난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인 뒤 이어 말했다.
“만약 우생학이 옳고 인간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위가 생겼다면 전 전 전쟁을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끝도 없이 열등하다는 것들을 청소했겠지요. 마치 나치처럼 말입니다.”
“허나 전 신을 믿고 기적을 믿으며 운명을 믿습니다. 우린 모두 평등한 인간입니다.”
짝, 짝짝.
명연설이라고 느꼈는지 더글러스는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이윽고 뒤따라 수많은 이들이 내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피던 담배나 계속 피워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딱 내가 못 박는다. 인종차별은 나치다.
꼬우면 어디 반박해보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