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621
제 621화
621. 외전, 미궁의 마법사 (4)
“인위적이라니. 그리 말하니 나쁜 짓 같군요. 어디까지나 던전을 공략한 자에 대한 보상입니다. 다른 보상을 원한다면 그것을 줄 것이고요.”
남자는 부정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릴난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이미 개념을 지배하는 존재기 때문이겠죠. 자신의 사도를 아무리 강하게 키워 봤자 결국 바라는 것은 이미 지배당하는 개념. 초월자가 될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곳은 텅 빈 영역. 개념이라 할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격을 갖춘 자만 나타난다면, 충분히 초월자가 될 수 있다. 아릴난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설령 어떠한 개념을 지배하는 자리에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어떠한 개념을 지배하고도 무너지지 않을 격을 갖추어야 한다.
일반적인 신앙신이나 불멸자 레벨은 아득히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게 설계할 겁니다. 그걸 위해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한 거고요.”
수많은 초월자의 협력으로 만들어 낸 공간.
그곳을 완벽하게 공략한다면, 분명 초월의 지척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마법사는 애초에 그런 방향으로 설계할 생각이었다.
던전은 남자의 텅 빈 영역으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을 준다면 남자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기껍게 웃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아릴난은 쿡쿡 웃으며 생각했다.
우주 전역에서 가치 있는 필멸자들을 모은다.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던전에 도전한다.
그들의 삶을, 투쟁을, 죽음을 지켜본다.
필멸자들의 모험을 지켜보고, 그들의 성장과 죽음을 즐긴다.
그것이 남자의 바람.
모험의 신인 상태로는 즐길 수 없다. 왜냐하면 모험이란 개념 자체의 주인인 이상, 그들의 모험이 어떤 식으로 종막을 맞이할지 전부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모험의 개념을 버리고, 자신의 영역을 새로이 개조한다.
“그렇게 되겠지요.”
아릴난은 즐겁게 웃었다.
“만족하셨다면 다행이군요. 아릴난 님은 크나큰 협력자가 되어 주어야 하니까요.”
“결국 한정된 공간이니까요.”
던전은 텅 빈 영역.
그 안에서 생명과 구조의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아릴난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그녀가 지배하는 것은 만물의 순환이기에 그 개념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설계가 압도적으로 쉬워졌다.
아릴난이 중얼거린다. 흥미 어린 눈동자로 남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미소 지었다.
* * *
남자는 순환의 개념을 얻어냈다.
텅 빈 영역이 천천히 순환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만족스레 웃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던전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은 필멸자도 초월자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던전.
순환의 개념. 단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수많은 개념이 필요하다.
남자는 다른 초월자들을 찾아가 말했다.
자신은 원대한 던전을 만들고 있다고.
그곳으로 우주 전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전사와 영웅을 불러 돌파하게 하고 싶다고.
그들의 도전과 목숨을 건 투쟁을, 그리고 덧없는 죽음을 지켜보고 싶지 않냐고.
만약 바란다면, 그들의 투쟁을 직접 지켜보고 마음에 드는 자를 사도로 고를 수도 있다고.
투쟁과 죽음의 신. 라키라타스는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였다. 자신의 영역을 너무나도 선뜻 넘겨 줘서 남자가 당황할 정도였다.
선택의 신도 흥미롭다는 듯 큰 거부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던전을 찾는 모험가들을 하나하나 지켜봐도 되냐고 물었고, 남자는 당연한 권리라고 수락했다.
승리의 신은 조금 떨떠름해 보였지만 흥미는 있었는지 받아들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신의 협력을 받아 그들의 영역을 얻어 냈다.
안타깝게도 죽음은 얻어 내지 못했다.
데르샤를 찾아가 봤지만, 그녀는 어째서 그런 것에 자신의 영역을 소모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날 때부터 초월자였던 그녀는 생명이라기보다는 장치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 그 자체를 얻는다면 설계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투쟁으로서 일어나는 죽음에 대한 영역은 얻어 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 뒤로는 여러 가지 영역을 서로 혼합하여 하나의 형태로 만드는 것. 파편이라지만 각기 다른 우주의 개념인 만큼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됐군.”
무지개색으로 일렁이는, 근본이 무엇인지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영역이 완성되었다.
남자는 즐겁게 웃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곳을 던전으로 개조해야 한다.
구조는 미궁. 계층은 10층 단위로 바꾸게 한다. 깊이는 설계를 하면서 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그를 보조하여 미궁을 지켜볼 관리자가 필요했다.
남자는 손가락을 튕겼다.
“나와라.”
쿠구구구궁…….
일그러진 영역 속에서 장치가 태어난다. 무기질로 이루어진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너의 이름은 발바밤바다. 나를 도와 이곳을 관리해라.”
발바밤바는 묵묵히 답했다.
무지갯빛 영역에 주저앉은 남자는 턱을 톡톡 두들겼다.
어떻게 미궁을 설계할까.
전체적인 틀은 잡혔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정해지지 않았다.
일단 필요한 건 미궁의 보상. 눈에 보이는 당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당근은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어야 한다.
오로지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어야지 강자들이 모일 것이다.
남자는 그 보상을 위해 우주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법 대신 기계와 기술이 발전한 세계에서 흥미로운 개념을 찾아냈다.
“시스템인가.”
그 세계에는 가상의 세계가 있었다. 그곳에는 인간의 능력치가 스탯이라는 이름으로 보이고 수치화되고 있었다.
특별한 스킬을 다루고, 자신을 강화하는 장비가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세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개념.
하지만 이 일그러진 공간이라면 저러한 시스템을 현실로 끌어 올 수 있었다.
“좋아.”
눈에 보이는 수치화된 강함이란 것만큼 사람을 사로잡는 건 없었다. 저걸 미궁의 기본 체계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시스템을 미궁에 설정하고 수치를 개념화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본 구조의 완성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층을 설계할 시간이었다.
“뭐로 할까.”
남자는 즐겁게 중얼거렸다. 1층이라고 허투루 만들 생각은 없었다. 각 층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우선은 1층은 너무 어렵지는 않게.
강자만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재능을 가졌지만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한 이들 또한 오리라. 그들도 전력을 다하면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가 있어야겠지.
남자는 전 우주를 돌아다니며 적합한 생명체를 찾았고.
그리고 수년 후.
“찾았다.”
그것은 거대한 쥐였다.
한 행성에서 뒤틀린 숲에 자리 잡은 짐승으로, 매우 똑똑하고 빨랐다. 재능 있는 인간도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였다.
이 짐승이라면 1층의 몬스터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 주리라.
그들 수십 마리를 데리고 미궁의 1층에 풀어놓는다.
그러면 다음은 2층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다시금 우주를 돌아다닌다.
그 과정이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앞으로 이 미궁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즐겁게 만들겠지.
그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찌 지루하겠는가.
우주를 돌아다닌 끝에, 남자는 찾아냈다.
한 행성에서 고블린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의 목적은 세계의 정복.
지성을 가진, 말을 하는 고블린을 리더로 삼은 그들은 질주하여 세계를 짓밟았다.
고블린이 세계 정복을 시도하다니.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남자에게도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힘을 합친 인간들에게 밀려 변방의 숲까지 쫓겨났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후, 거의 전멸하여 몇백의 고블린만 남았을 때 남자는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고블린이 거칠게 대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벌린다. 남자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경계 어린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고블린이 입을 열었다.
“인간?”
“어떨 거 같아?”
“……아니군.”
고블린은 대검을 내렸다. 남자는 물었다.
“너의 이름은?”
“고블린 로드. 게메-수다.”
“게메-수. 너희는 패배했어. 몇 시간 후 인간들이 이곳을 습격해 너희 모두를 죽이겠지. 분해?”
“분하고말고. 세계를 정복해 우리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으니.”
야망을 품은 고블린이라니. 역시 특이했다.
잠시 고블린을 바라보던 남자는 말했다.
“미궁에 들어올래?”
“……갑자기 무슨 말인가?”
남자는 미궁에 관해서 설명했다. 게메-수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미궁에 들어오면 너희는 너희가 자리한 계층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침입하는 외부인을 죽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인가? 미궁의 계층을 담당하는 존재?”
“역시 똑똑하네. 정답이야.”
“내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의미 없게 죽는 것보단, 적어도 거기서는 네가 바라는 죽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 너는 그곳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단련할 수도 있겠지.”
미궁에 속박된다는 건 즉 영역의 일부가 된다는 것과 같다.
미궁 그 자체가 부서지지 않는 한, 게메-수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거절은?”
“마음대로. 강요는 안 해. 단지 떠날 뿐이지.”
게메-수는 쓰게 웃었다. 그들은 이미 끝에 몰렸다. 할 수 있는 건 최후의 저항뿐. 그조차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전멸하겠지.
“선택권 따위는 없군. 받아들이지.”
“훌륭한 선택이야.”
남자는 빙긋 웃었다.
계약은 이루어졌다.
게메-수를 비롯한 남아 있는 고블린들은 미궁의 2층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더욱 강해진다면 보다 심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으리라.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 아니다. 육체의 죽음이다. 영혼은 미궁에서 순환하여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날 것이다.
물론 육체를 잃은 만큼 기억은 남지는 않겠지만, 영혼에 새겨진 경험은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겠지.
과연 계층을 담당하는 몬스터들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까.
그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미궁의 설계가 하나둘 이루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