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622
제 622화
622. 외전, 미궁의 마법사 (5)
3층과 4층은 오크다.
하지만 평범한 오크는 아니다.
전 우주의 오크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부족을 이끄는 자들.
평범한 모험가 따위는 순식간에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였다.
비어 있는 층을 계속해서 채워 나간다. 그러던 중 발바밤바가 불평을 했다.
“나는 채우는 역할이지.”
“그걸 내가 왜 해? 그거 하라고 너를 만든 건데.”
발바밤바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더니, 곧 입이 열렸다.
“그래?”
“흐음.”
남자는 턱을 쓰다듬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거대한 영역을 발바밤바 혼자서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관리자인가.’
그러고 보니 몬스터만 있으면 미궁이 너무 칙칙하지 않은가.
모험가들을 안내하는 자들이 있으면 더욱 좋으리라. 남자의 눈이 빛났다.
몬스터와는 다른 계약을 맺은 자들.
그들은 미궁에 자리 잡아 찾아온 모험가들에게 퀘스트를 주고, 물건을 판다.
그렇다면 그러한 계약자들은 어떻게 미궁에 불러 모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어렵지 않았다.
미궁은 수많은 강자가 모이는 공간이다.
설령 누군가가 불가능에 가까운 소망을 가지더라도, 모험가의 도움을 받아 언젠가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소망을 가진 자들. 그들과 계약을 맺어 미궁에 자리 잡게 만든다.
남자에게는 미궁의 안내인이 생기니 이득. 모험가에게는 퀘스트와 그에 걸맞은 보상이 생기니 이득. 계약자들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생기니 이득이었다.
“이득밖에 없군.”
남자는 즐겁게 웃었다. 또 할 일이 생겼다. 매우 즐거웠다.
층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
지루하면 안 되니 10층 단위로 바꿀까.
수많은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처음보다 더욱 많은 초월자들과 계약을 맺고, 안내인들을 하나둘 구한다. 층 또한 다양한 몬스터들로 점점 채워간다.
그리고 고신들과의 충돌이 일어난다.
앞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우주에 영향을 끼칠 사건.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남자는 미궁의 설계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초월자를 기준으로 봐도 아득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미궁이 완성되었다.
* * *
“좋아.”
남자는 만족스레 웃었다. 미궁이 100층까지 빈 곳 하나 없이 완성되었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각 층의 디자인이나 난이도 조정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겠지.
하지만 일단은 이걸로 전체적인 틀은 완성되었다.
이제 미궁을 개발해도 되었다.
“그러면.”
미궁을 찾는 모험가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까.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글귀를 적었다.
쓰다 보니 흥에 겨워서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상관없다. 나중에 고치면 해결되는 문제니.
남자는 미궁을 개방했다.
초월자들이 만들어 낸 미궁.
그 미궁의 정복에 성공하면, 그 어떠한 소원도 이룰 수 있다.
그 소식이 우주 전체에 알려지고 퍼진다.
그리고 각 세계에서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강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들 대부분은 20층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는다. 미궁은 만만하지 않다. 겨우 세계 하나에서 과신할 수 있는 재능이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하게 설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는 그보다 더 깊이,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강운에 기대며 도달한다.
물론 그들도 50층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남자는 그들의 모험과 죽음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이전이었다면 그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았으리라.
그는 모험의 신. 그들의 모험이 어떻게 끝날지 전부 알고 있었으니.
하지만 더 이상 그는 모험의 개념을 지배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모험과 투쟁. 그 하나하나가 새롭고 기대되었다.
남자는 만족스레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던 중, 마침내 미궁을 가장 깊게 내려간 자가 나타났다.
그는 남자가 설계한 심층. 70층을 넘어서 더욱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남자는 그의 도전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꺾여 버렸다.
미궁의 거대함에 굴복하고, 더 이상의 공략을 포기했다.
마법사는 그와 계약을 맺어 미궁의 문지기 역할을 시켰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미궁에 도전하고.
스러져 죽는다.
개중 일부는 필사의 노력과 투쟁 끝에 미궁의 끝에 도착한다.
하지만 미궁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단지 끝에 도달했을 뿐이었기에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 뒤로도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남자는 보았다.
심층을 뚫지 못하고 가로막힌 자들이 미궁을 통제하는 것을.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죄악의 길잡이라고 부르는 것을.
“저것들은 뭐야?”
헛웃음이 나온다. 모험가가 미궁을 관리하려 들다니.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정령왕에 대마법사에…… 얼씨구. 가지가지 하네.”
잠깐 개입할까도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을 버렸다. 저들의 저러한 행동 또한 하나의 모험이라고 봐야겠지. 그건 그거대로 즐거웠다.
무엇보다 미궁을 정복할 자는 저들의 압박 따위는 뚫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시련이라고 보면 되겠지. 남자는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다양한 자들이 미궁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정복의 가능성에라도 도달한 자는 없었다.
“언제쯤 나올까.”
알 수 없다. 미궁을 정복했다는 건 곧 영역의 정복. 초월자가 될 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니. 아득한 시간이 흘러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수억의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나타날 수도 있다.
그때까지 그는 즐길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남자는 고신에게 멸망하던 세계에서 온, 시간을 거스른 한 남자를 보았다.
* * *
“이 뒤로는 너도 아는 이야기.”
태산은 미궁을 내려갔다. 그는 미궁 정복을 시작했으며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시스템 그 자체를 이용하여 마침내 정복에 성공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
마법사가 마법사가 되기 전.
그리고 마법사가 된 이후의 이야기.
묵묵히 있던 태산이 입을 열었다.
“추락의 신과 같은 경우인가.”
“디테일한 부분은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다 봐도 되지? 그는 결국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까지 추락시켰으니.”
추락의 신은 추락의 개념 그 자체에 미쳐 버렸다.
그렇기에 고신에게 자신까지 바쳐 가며 스스로 추락하길 바랐다.
“하지만 너는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 해결했군.”
“그래. 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나도 자신을 비우긴 했지.”
태산은 찬탈자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버렸었다.
그에 반해 마법사는 모험이라는 개념만을 버렸으니, 분명한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둘 다 자신을 비우는 과정을 겪었다.
“나는 끝없는 공허함을 느꼈어. 그 끝에 나 자신의 개념을 버렸지.”
마법사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나는 모험의 신. 모험의 신. 바라미안이었던 자.”
그것이 마법사의 이름.
“지금은 단순한 미궁의 마법사에 불과하지.”
“만족해?”
“만족 못 할 이유라도 있나?”
마법사는 웃었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웃음이었다.
“나는 모험을 버리고 다시금 모험을 되찾았어.”
스스로 바라는 것을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바라는 것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한 결과물을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지.”
미궁을 정복한 자.
미궁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초월자가 된 자.
우주의 이레귤러가, 그의 미궁에서 탄생했다.
“만족하냐고? 아주 만족하고말고. 더 만족스러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란 것이야. 앞으로도 나는 미궁을 지켜볼 거야. 아주 오랜 시간 끝에 누군가는 또다시 미궁을 정복하겠지. 그리고 나는 그에게 찾아가서 물을 거야. 정복의 대가로 무엇을 바라냐고.”
마법사의 모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미궁을 지켜보며 필멸자들의 모험을 즐기리라.
태산은 입을 열었다.
“너는 대단하군.”
“……영광이군. 최고의 찬사야.”
마법사는 킬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