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older brother of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그날의 기억
그날의 기억
“윤아 씨. 요즘은 괜찮아요? 잠은 잘 자고?”
“아, 네.”
정신과 선생님의 물음에 정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힘없는 목소리에 박혜경은 그녀의 상태가 예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탑으로 꼽히는 연예인이기에, 그 살인적인 스케줄을 매번 감당해야만 한다.
이 정도 굴렸으면 소속사에서도 고려해 쉴 시간을 줘야 할 텐데, 이놈들은 돈에 미친 건지 정윤아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곳 병원에서의 시간이 그녀에게 휴식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휴식 좀 달라고 하면 어때? 너무 스케줄이 과한 거 아닐까?”
“아니요. 괜찮아요. 차라리 아무 생각 안 나게 스케줄이라도 많은 게 나아요.”
“······.”
회사도 문제지만, 정윤아의 행동도 문제였다.
자신의 슬픔을, 그 지독한 우울감을 최대한 많은 일을 하면서 잊으려고 한다.
지금 그녀에게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잠깐이라도 자신의 정신을 다른 곳에 환기시켜 줄 수 있는 무언가 말이다.
“윤아 씨. 이거 받아요.”
“······?”
혜경은 스프링이 달린 작은 수첩을 건넸다.
“버킷리스트 수첩이에요. 수첩을 펼쳐 보면 세세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정할 수 있는 것들이 나와 있어요. 그걸 보면서 한번 적어 봐요.”
“버킷리스트요?”
버킷리스트.
죽기 전 이뤄야 할 소원 노트라고나 할까.
정윤아처럼 기계 같은 삶을 살며, 아무런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딱 필요한 처방이었다. 물론, 이것이 도움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응. 윤아 씨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거. 아니면 우스꽝스럽더라도 원하는 소원을 적어 봐요. 어차피 윤아 씨만 보는 거니까.”
윤아는 눈을 껌뻑거리며 노트를 들춰 보았다.
조금은 흥미가 생긴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버킷리스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원을 써도 그 소원을 이룰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윤아는 웬만한 소원들은 다 이룰 수 있는 재력을 갖추고 있다.
만약 그녀가 이것에 흥미를 갖고 진지하게 파고든다면 충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다음에도 비슷한 시간에 오세요, 윤아 씨.”
“네. 선생님. 아······. 그리고요.”
“응?”
“아직도 잠이 잘 안 와서요. 수면제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정윤아는 불면증도 같이 앓고 있었다.
잠이 들면 죽은 부모님이 자꾸 꿈에 나타나 괴롭다고 했던가.
그래서 종종 이렇게 수면제를 처방받아 간다.
안쓰러운 마음에 박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기다려 봐요.”
정윤아는 약을 받은 뒤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차량에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윤아 씨.”
차에 올라타면 그녀를 반겨 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2년 전부터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해준 사람, 김은성.
늘 무뚝뚝한 얼굴에 목소리도 무미건조했지만, 이상하게 정윤아는 거기서 편안함을 느꼈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여기 어둡고 좁은 벤이라는 게 참 웃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무슨 일 있으시면 곧바로 연락주시고요.”
정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도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녀는 탑스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방송 이외에 누군가와 웃으며 떠드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럴 힘도 없거니와, 소속사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생활을 전부 다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허튼짓할 생각 하지 말고, 네 일이나 똑바로 해. 점점 밑에 있는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 거 알지? 그런 애들한테 따라 잡히는 거 순식간이야. 그러니까 정신 차려라.”
정윤아의 오빠, 정윤성이 있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부터였을까.
정윤성의 성격은 더욱 포악해지더니 정윤아를 괴롭혔다.
끝끝내 그는 친척들과 소속사를 차린 뒤 정윤아를 간판으로 내세워 돈을 쓸어 담았다.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정윤아의 정신 상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
“······응.”
정윤아는 그렇게 목줄이 잡힌 채로 지냈다.
그냥 탈출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모질게 마음을 먹기도 힘들었다.
그저 먼저 허무하게 떠나간 엄마, 아빠의 얼굴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
브랜드 행사가 끝나고 오빠와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정윤아는 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으으-”
오늘따라 두통이 심해지고 속이 매스꺼워진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부모님 얼굴을 또 떠올렸기 때문일까.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하고 있었다.
“윤아 씨!”
“정윤아 씨!!”
“한 말씀만 해주세요!”
그런데 엎친 데 엎친 격으로 기자들과 팬들이 몰려 있었다.
쏟아지는 질문, 환호성, 등등.
정윤아는 세상이 빙빙 돌면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두 물러나 주세요.”
김은성 매니저가 사람들을 비집고 나와 정윤아를 데리고 차에 태웠다.
정윤아는 숨이 가빠 오면서 손을 부르르 떨었다.
“매, 매니저님.”
김은성은 미리 준비해 놓은 약과 물을 건네주었다.
약을 먹고 나서야 진정이 된 정윤아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흐르는 무거운 적막.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
오늘은 집에 가기가 싫었다.
이 상태로 집을 가면 정말 못 된 결심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기······.”
“네?”
“집에 바로 가기 싫어요.”
오늘은 어디든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 * *
김은성 매니저가 정윤아를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바다였다.
우울할 때 바다를 보면 더 우울하다고 바닷가 근처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정신과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제가 여기를 왜 좋아하는지 아세요?”
“네?”
“사람이 없고 조용한 것도 있지만, 여기가 소원을 이뤄주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
“여기 작은 돌에다 소원을 빌고 바다에다 던지면 소원을 이뤄준대요.”
설마 그걸 정말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말요?”
못미더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김은성 매니저는 애써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 그럼요.”
그 모습이 왠지 웃기다고 해야 할까.
2년 동안 같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하는 것도, 웃음을 짓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좋아요.”
오늘은 다르게 행동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게 말이다.
“음~”
정윤아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눈에 예뻐 보이는 돌을 골랐다.
별것도 아닌데, 왠지 신이 났다.
“매니저님은 안 골라요?”
“네? 아, 네. 저도 골라야죠.”
그 목소리에 김은성도 얼떨결에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 돌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예쁜 거 같아요. 매니저님 줄게요.”
“아. 고, 고맙습니다. 윤아 씨가 준 거니까 무조건 소원이 이뤄지겠네요.”
실없는 소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부터 던질게요.”
퐁당~
힘껏 던진 것 같았으나, 돌은 바로 앞에 퐁당 빠져 버렸다.
“히잉.”
그래도 소원은 하나 빌었다.
“괜찮아요.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김은성 매니저도 비슷한 곳에 돌을 던져서 빠뜨렸다.
일부러 배려를 해준 것일까.
이런 것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매니저님은 어떤 소원을 비셨어요?”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걸 빌었죠. 로또 1등 당첨, 뭐 그런 거요. 윤아 씨는요?”
“전······.”
정윤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친오빠가 생기게 해달라고요.”
“······?”
“제가 정말 의지할 수 있는······그런 진짜 가족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여기 김은성 매니저가 내 친오빠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난 부모님의 죽음을 잊고 좀 더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원이겠죠? 이제 돌아가요.”
일탈은 여기까지다.
정윤아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아까 전보다 훨씬 더 무거운 침묵이 검은 벤 안에 감돌았다.
“오늘······감사했어요.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하지만 결코 오늘 일이 허튼짓은 아니었다.
잠시나마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김은성 매니저님.”
매니저의 얼굴에 당혹감이 일었다.
설마 내가 이름을 불러 준 게 처음이었나.
나 진짜 쓰레기였구나.
“······.”
샤워를 마치고 나서 침대에 누운 정윤아.
밤만 되면 몰려온다.
이 어둡고 침침한 외로움이.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아침에 받았던 수면제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고 서랍을 열자 지금까지 처방받은 수면제가 가득 담겨 있었다.
“······.”
정윤아는 그 약을 한 움큼 집었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걸 먹으면 영원히 편안해질 수 있다고.
더는 그 지독한 오빠의 얼굴도, 친척들도,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낼 수 있다고.
천천히 손이 입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
서랍 위에 올려 두었던 조약돌이 눈에 들어오면서 손이 멈췄다.
“······바보 같긴.”
오늘 바닷가에서 가져온 조약돌.
조약돌 하나를 바다에 던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그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조약돌을 보고 있으니, 한 번만 더 살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수면제를 전부 쓰레기통에 넣었다.
“······.”
그리고 다시 올려다보는 천장.
여전히 어둡다.
그녀는 서랍 위에 올려다 두었던 조약돌을 꼭 손에 쥐었다.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정윤아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 * *
쿵쿵-!
“으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윤아는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친. 내가 얼마나 잔 거야?
분명 오늘 아침에 스케줄이 있을 텐······.
“뭐, 뭐지?”
그런데 여긴······.
정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여긴, 자신이 중학생 때 살던 방이었기 때문이다.
“정윤아!! 빨리 일어나! 학교 안 갈 거야, 이 기지배야!”
그리고 이건 설마······!
정윤아는 얼른 방문을 열어젖혔다.
“어머. 깜짝이야. 이게 반항을 하나.”
놀랍게도 그곳에는 죽은 엄마가 서 있었다.
예전 그 예쁜 그 얼굴로 말이다.
“어, 엄마. 엄마!!”
정윤아는 엄마 품에 와락 안기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아, 아니. 이게 왜 이래?”
당황한 엄마는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꿨어? 누가 우리 윤아한테 그랬어?”
“엄마······.”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던 윤아 곁으로 한 사람이 더 다가왔다.
“뭐야. 우리 윤아 왜 그래? 어떤 놈이 우리 윤아를 울렸어? 설마 당신이야?”
“어휴. 당신은 저쪽 가서 밥이나 먹어.”
“아빠? 아, 아빠!!”
정윤아는 이번에 아빠 품에 쏘옥 안겨 그동안의 설움을 풀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여기서 이 두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
정윤아는 의자에 앉아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우니까 더 못생겼네.”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 * *
달콤한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정윤아는 이것이 혹시 꿈이면 어떡하나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정말 정윤아는 회귀를 했다.
“설마 그 조약돌 때문인가?”
하지만 그때 빌었던 소원은 가족
같은 친오빠를 달라고 한 거였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저번 생과 똑같이 되풀이할 순 없어.”
똑같은 일을 되풀이해서 그 지옥 같은 삶을 다시 살 순 없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버킷리스트······.”
정윤아는 집에 있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이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소원들을 적어 나갔다.
그중 단연 첫 번째는 부모님을 살리는 것이었다.
“윤아야.”
“응?”
“가서 오빠 좀 깨워 와.”
“아, 응!”
정윤아는 엄마의 말을 듣고 오빠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문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자꾸만 미래의 오빠 모습이 떠올랐던 탓이다.
늘 부모님의 죽음은 너의 탓이라고, 너 때문이라며 악담을 하던 오빠.
솔직히 지금도 오빠를 보는 것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오빠! 엄마가 일어나래~”
쾅쾅쾅-!!
“아직도 자? 문은 또 왜 잠그고 있는 거야? 안에서 뭐 해?!”
뭐지? 왜 안 나오지?
“문 좀 열어 봐! 일어난 거 다 알거든?”
그때였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정윤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일어나 있었잖아?”
보통 이럴 때면 오빠는 인상을 찌푸리며 욕을 시원하게 박아 버린다.
그런데,
“어어······.”
오빠가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저 흔들리는 눈동자.
왜 저러는 거지?
“또 나 못생김 묻었다고 놀리려 한 거지? 그치!?”
“······.”
이번에도 별로 대답이 없다.
그저 자기를 빤히 쳐다볼 뿐이다.
“뭐야. 오빠. 왜 말이 없어?”
늘 차갑기만 했던 오빠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씨. 또 사람 말 무시하고. 몰라. 엄마가 빨리 와서 밥 먹으래.”
정윤아는 그리 말하며 몸을 돌렸다.
왜 갑자기 오빠가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 눈동자에서 익숙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김은성 매니저처럼 말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정윤아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쩌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본다고 해도 그는 날 모르겠지.
만약 보게 된다면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고.
그리고 당신도 부디, 그날 빌었던 소원을 꼭 이루길 바란다고.
‘그때 로또 1등 당첨을 빌었다고 했었지?’
정윤아는 로또 1등에 당첨된 김은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그녀도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탑스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