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
“사장님!”
“어, 이 전무 왔나?”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대흥중공업 황태자 이형선 전무가 최진석 사장을 보자마자 언성부터 높였다.
“허허.”
최 사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히스테리 부리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라 이골이 난 것도 있지만, 저러는 이유가 짐작됐기 때문이다.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남매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출발한 여론은 이젠 누가 더 대흥중공업에 적합한 인재인지에 대한 평가로 넘어갔다. 결과는 뻔했다.
초대형 적자를 내고도 경영권 승계에 매달리는 대흥중공업. 그건 이형선의 자질 문제로 이어졌다. 사실상 오너나 다를 바 없는데,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이유선에 대해서는? 대수조선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 속에서 대흥중공업도 잘 이끌 것이란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중이다.
이형선으로는 무척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이라는 건 물과 같다. 물길이 잡히면 길을 따라서만 흐르게 마련이다.
최 사장이 이 전무의 히스테리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이유였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고요. 이거 보세요. 개망신당하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옵니까?”
이 전무는 종이를 거칠게 흔들며 최 사장을 갈궜다. 최 사장은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대흥중공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함과 동시에 증권사들의 리포트들이 쏟아졌다. 애널리스트들 불러놓고 비싼 밥을 먹여놨으니, 당연히 우호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마일드금융투자에서 리포트가 나온 이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에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강력한 리포트 말이다.
“걔네들이 그렇게 분석했다는데, 어쩌겠나?”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사전에 미리 마사지를 해놨어야 하는 겁니다. 마일드 그 새끼들이 그딴 소리 지껄이지 못하게요!”
“허허. 열 몇 개나 되는 리포트 중에서 딱 하나가 그랬다고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이 아니지 않나?”
“그 하나가 여론을 흔들어놨으니 하는 소리입니다. 마일드 그것들이 유일조선이랑 붙어먹는 거 아시잖아요! 유선이 그년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허허. 내가 뭘 더 어떻게 하겠나? 자네도 동생 하나 제어를 못 하는데 말이야.”
“아, 진짜 성질 뻗쳐서……. 그년이 이렇게 나올 거란 예상을 당연히 했어야죠!”
“허허허. 우리야 최선을 다하고 있네. 어차피 결과야 뚜껑 열어봐야 아는 것 아니겠나?”
“네에. 참 여유로워서 좋으시겠습니다.”
이 전무의 도발과 빈정거림에도 최 사장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전무가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이유선이 이사회를 장악한다고 해도 최 사장으로서는 밑질 것 없었다. 아니, 이 전무가 저 난리를 치고 있는 걸 보면 이유선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국민연금은 어떻게 한답니까?”
이 전무의 질문. 이제 믿을 건 국민연금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기야 뭐……. 다음 주에 결론 내린다고 하니까 기다려 봐야지.”
“사장님! 지금쯤이면 이미 결론이 나왔어야지요! 하아, 진짜. 아니, 일을 대체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허허. 진정하라고. 국민연금이 예전 같지가 않아. 왜 그, 저번에 순양상사 합병 찬성했다가 욕 엄청 먹었잖아. 그래서 고민이 많은 모양이야.”
“순양상사 때문에 욕을 먹었다고 우리가 눈치 보면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거기 분위기가 그런 걸 어쩌겠나. 안 그래도 기금운용본부에 연락 좀 돌려놨으니까 기다려 보자고.”
“본부장을 만나서 확답을 들어야죠! 당장 찾아가서 답을 듣고 오라구요!”
최 사장은 살짝 움찔했다. 그렇게 소리만 지르고 있지 말고 답답하면 네가 직접 뛰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마음속으로 ‘참아야 한다’를 3번 외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 전무. 너무 초조해하지 마. 지금 확보한 지분만 30%가 넘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그러니 좀 진정하자고.”
“저쪽은 얼마나 확보했는데요?”
“맥시멈으로 잡아도 30% 남짓일 거야.”
“뭐라고요? 그럼 저쪽이 이길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닙니까!”
“진정하자니까 그러네. 자네도 알다시피 소액주주들은 회사 편을 들게 마련이야. 주주총회 한두 번 하나? 허허허.”
“일반적인 주주총회가 아니잖아요! 유선이 그년이 인터뷰며 광고며 물량 공세를 때리고 있는데, 그런 한가한 소리가 나옵니까!”
“허허허.”
최 사장은 지쳤다. 이 전무의 깽판을 더 이상 받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성질 더러운 녀석은 안심이 될 때까지 혹은 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퍼붓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들어야 할 대답이 아니라 듣고 싶은 대답만을 원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사장이 전무에게 굽실거리는 것도 경우가 아니다. 최 사장은 그저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웃지만 말고, 확실한 대답을 해 보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 전무는 그런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결국 분이 풀릴 때까지 들들 볶고 나서야 사장실을 나갔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지만, 분이 풀렸으니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하아.”
최 사장은 숨을 고르며 흥분한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엔 줄타기만 잘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승기가 기운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는 걸로.
그러나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만, 이 전무 저 새끼랑 계속 있다가는 저승 가는 길이 빨라질 것 같았다.
차라리 이유선한테 대놓고 붙는 게 낫겠다. 이게 심장을 진정시키는 동안 든 생각이었다.
바로 IR팀장을 불렀다.
“네, 사장님.”
“주총 준비하느라 정신없지?”
“아무래도 이번 주총이 주목을 받다 보니까 신경 쓸 게 많긴 합니다. 주총꾼들도 대거 달려들 것 같고…….”
“허허. 주총꾼들은 5만 원짜리 한 장씩 쥐여 보내면 될 일이지, 뭐.”
“네. 기념품도 신경 써서 준비해 놨습니다.”
“그래, 잘 했어. 쪼잔하게 1~2만 원짜리는 주는 건 좀 그래. 가드들 교육도 잘 시켜놔. 이래저래 이목이 집중되는데 괜히 불상사 일어나지 않게.”
“네, 알겠습니다. 노조 대응은 어떻게 할까요?”
“노조가 부글거리고 있으니 대응을 하긴 해야지…….”
이번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온 회사분할안에 대해 노조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이고, 그건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는 이유였다.
회사로서는 강경한 대응이 당연한 것이었다. 수많은 노조원들이 몰려와 주주총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게 놔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 사장은 이번에 생각을 달리했다.
“주총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은 했나?”
“네. 주총 전에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럼 됐지, 뭐.”
“네? 잘 못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대응할 거 다 했다고. 가처분 인용되면 그만 아닌가?”
“네, 그렇죠. 그렇긴 한데…….”
“왜? 유혈사태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럼 됐구만. 허허. 그리고 진행은 좀 유도리 있게 하자고. 연기자들 너무 많이 섭외하지 말고. 평소랑 다르게 할 말들 많을 텐데 연기자들 오바해서 싸움 날까 봐 걱정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진행은 유도리 있게. 행사장에서 싸움 나는 것처럼 꼴불견도 없어. 오케이?”
주주총회가 주주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해진 절차를 밝는 것일 뿐이다. 주총을 준비하는 회사는 어떻게든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그에 맞먹는 기술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주총 진행을 융통성 있게 하라? 그건 기술을 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주총에서 반대 의사를 밝힐 이유선 측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 사장은 확신했다. 이유선이 권력을 잡아도 자신을 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확신이 들었으니 이유선을 밀어주겠다는 의사를 은은하게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아이고, 사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냥 눈치만 보고 있어도 된다니까 그러시네.”
이유선 편에 서겠다는 의사에 심복인 김진만 영업본부장이 부리나케 달려와 우려를 쏟아냈다.
“네 말도 맞는데, 내가 그렇게 못하겠어.”
“이 전무 때문에 그러십니까?”
“진만아. 내가 이 나이 먹고 이 전무 그 자식 깝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냐?”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그러다가 이 전무가 이기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지금처럼 박빙일 때는 가르마 타면서 앉아 있는 게 최고라니까요.”
“박쥐는 박쥐일 뿐이야. 새로운 왕조를 여는 건 우두머리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지. 우리 같은 이들이 공신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법 아니겠나? 선택했으면 주군이 왕좌에 앉을 수 있도록 헌신해야지. 안 그래?”
마음을 굳힌 최 사장은 이유선에 대한 지지 의사를 꺾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그저 안위가 걱정될 뿐이었다.
“사장님이야 어떻게든 노후가 보장되겠죠. 근데 저는 그게 아니라니까요. 여차하면 저는 그냥 쓸려나갑니다. 제 생각도 해주셔야죠.”
“걱정 마, 인마.”
“솔직히 걱정이 되죠. 이유선 쪽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으면 저라도 발 벗고 뛰어들겠습니다. 근데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괜히 걱정하지 말라고 하겠어?”
“오호라. 뭐 믿는 구석이 있으신 겁니까?”
“어제 이 본부장한테 전화가 왔어.”
“이 본부장이요?”
“기금운용본부장 말이야.”
“아하! 국민연금에서 결론 내렸답니까?”
“대뜸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뭐가 미안하냐고 그랬더니, 여론 때문에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네? 허허. 그게 무슨 의미겠어?”
지분 11%를 가진 국민연금이 이유선 쪽에 붙겠다는 의사. 최 사장은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
“하하하.”
“좀 진정해.”
“푸하하하.”
이유선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웃들의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다. 그래서 난 속으로만 호탕하게 웃었다.
왜 이리 기분이 좋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보도자료가 나왔으니까!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 잘 들어 봐봐.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 이거 우리 편 들어주겠다는 소리지?”
“우리 마나님께서 행간을 아주 잘 읽으셨네. 그것들도 눈치가 있는데 바보짓 하겠어?”
“여론전 들어간 게 아주 잘 먹혔네. 그렇지?”
국민연금은 보도자료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자기야, 국민연금이 반대표 던지겠다고 했으니까 부결은 확실할 거야. 이젠 그다음 수순을 밟을 준비를 해야지.”
“주총 끝나면 바로 주총 소집해야지. 그렇게 이사회 갈아치우고 나면 일사천리지.”
“우리 여사님께서는 당분간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으시겠네. 동네 마트 갈 때도 풀 메이크업해야 할지 몰라.”
“그럼 다들 나만 쳐다보겠네? 하하하.”
“아휴, 부끄러워서 마트도 같이 못 가겠어. 이런 게 신혼인가 싶네.”
“하하. 걱정 마셔.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조용히 살 테니까.”
“어떻게 조용히 살아! 장인어른이랑 똑같이 생겼다는 게 티비며 신문이며 다 알려졌는데!”
묵직한 냥냥펀치를 얻어맞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대흥중공업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는 것이 확정됐는데, 이깟 주먹 몇 방쯤이야…….
태생적으로 언론에 거부감이 가득했지만, 이번엔 아주 제대로 활용했다.
대흥중공업의 지주회사 전환 방안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둥 온갖 그럴싸한 글자를 가득 담은 광고를 대대적으로 때렸고, 인터뷰도 오는 족족 다 받아들였다. 물론, 이유선이.
언론들은 재벌가 남매간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환장하며 달려들었고, 때마침 마일드금융투자는 과감한 리포트를 발표하며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활활 타오르는 여론에 남은 건 국민연금의 선택.
이번에도 재벌가의 거수기 노릇으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겠냐는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순양의류와 순양상사 합병에 찬성하며 6천억 원을 날려 먹은 국민연금은 당연히 곤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이유선의 손을 들어주자는 것. 그럼 게임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