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전범재판 (4)
비록 실제로 허용된 권한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나 일본에서 천황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살아있는 유일신이나 다름없는 천황이 피고의 신분으로 재판장에 선다는 것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천지개벽 이상의 충격이었다.
천황을 처벌하느냐 마느냐를 두고서도 연합국 내에서 상당한 이견이 있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일본을 수월하게 통치하려면 천황을 살려서 허수아비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본이 항복 전에 내건 조건은 천황제 유지지, 현 천황의 목숨이 아니오.”
“천황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현 천황을 내리고 다른 천황을 세우면 될 일 아닙니까?”
천황 히로히토에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11세 언저리의 어린아이를 일국의 왕으로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선택된 대체제가 바로 히로히토의 동생 야스히토.
야스히토를 새 천황으로 내세운다면, 아무튼 일본이 요구한 천황제 유지 자체는 성립되니 문제없을 게 아닌가?
그리하여 일본의 유일신 히로히토는 전범 신세로 재판장에 출두했다.
전쟁에 협력하고 군부를 은밀히 지원하며 부를 쌓던 재벌 총수들도 줄줄이 엮어 재판장으로 압송되었다.
일본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범 혐의가 있는 자들은 모조리 포로수용소에서 재판장으로 직송되었다.
대령이든 소위든 이등병이든 간에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연합국이 들고 온 신조였다.
선거에서 패해 사실상 식물인간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월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침략전쟁을 일으켜 인명을 살상하고 평화를 깨뜨린 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천황도 예외가 될 수 없소.”
직접적으로 전쟁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진 않았지만, 국가 최고수장인 이상 히로히토 역시 전쟁에 대한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 최고수장이라는 자가, 전쟁을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일본이 항복 조건으로 내건 것이 천황제 유지일 정도로 천황은 일본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니, 그가 전쟁을 막을 의지가 정말로 있었다면 군부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었을 터.
하지만 히로히토는 그러지 않았다.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말했지. 선의 방관은 악을 꽃피운다. 히로히토는 전쟁을 방관했고 그 결과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소. 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전쟁을 방관한 자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일본군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고 일본 정재계를 주름잡던 거대 재벌들 역시 해체되었다.
화족(華族) 제도는 폐지되었고 천황의 직계가 아닌 방계 황족들은 신적강하(臣籍降下)되어 평민으로 전락했다.
당연히 연금도 받을 수 없으므로 이제부턴 각자도생해야 했다. 화족들로 이루어진 귀족원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월리스는 남은 기간 내 일본을 새롭게 재편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이제 영원히 군대를 가질 수 없소. 어차피 주변에 일본의 안전을 위협할 만한 국가가 없으니, 군대가 필요합니까?”
월리스는 일본에 군대를 남겨놨다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제2차 태평양 전쟁의 발발을 막으려면 전쟁을 유발할지 모르는 싹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뿐.
일본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미군이 반영구적으로 일본에 주둔하고 치안 문제는 경찰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일본을 둘러싼 주변국 중에서 일본을 침공할 만한 국가는 없다.
일본에 대한 원한이 쌓인 중국은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바쁘고 소련은 독일을 경계하기 바빠 일본과의 전쟁은 꿈도 못 꾼다.
그리고 그들의 물주인 미국이 일본을 실효지배 중인데 일본을 침공하는 미친 짓을 저지를까?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화된 극동의 상황은 일본이 군대를 가져선 안 된다는 미국의 주장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미국의 결정에 일본은 반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졌고,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자가 결정하면 패자는 닥치고 따라야 하는 법.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 동안 일본이 저지른 짓들을 연합국이 일본에서 그대로 저지르는 것이었다. 이 경우 일본의 인구는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고도 남을 것이다.
총과 대포, 전투기와 전함을 모두 갖춘 연합국과 군대는 해체당하고 지도부는 죄다 체포된 일본.
이 둘이 다시 싸운다면 승자는 누가 될지 불 보듯 뻔했다.
그랬기에 일본은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
1944년 12월 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1944년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나는 재판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잡범들의 재판은 해를 넘겨도 상관없지만, 처칠, 스탈린 같은 거물급들의 재판은 되도록 올해 안에 마무리 짓고 싶었다.
새로운 신년을 시작하는데 굳이 전범들을 그때까지 살려둘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범죄행위가 명확한 데다 판결도 이미 정해진 터라 그놈들에겐 더 이상의 재판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번 재판은 어디까지나 보여주기용 쇼지 죄의 경중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처칠, 스탈린, 해리스, 비신스키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게.”
“예료멘코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예료멘코의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참회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인지 제 목숨줄 부지해보려는 가식인지 몰라도 아무튼 그를 사형에 처하기에 죄가 조금 부족했다.
그렇다고 독일군 포로들을 학대하고 학살한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으니…….
“듣자 하니 소련에서 대숙청 기간 동안 체포된 범죄자들은 대부분 사형 아니면 25년형을 때렸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25년형. 그게 가장 적당할 것 같군.”
예료멘코는 25년간 노동교화형으로 확정했다. 고생 좀 하겠지만 그래도 죽지 않는 게 어딘가.
파벨리치와 한 약속도 있으니, 티토는 재판이 끝나는 대로 크로아티아로 이송될 예정이다.
티토의 참모 밀로반 질라스는 파르티잔들이 저지른 각종 잔혹행위에 대해 증언하고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예료멘코의 경우처럼 살려두고 적당히 빵에서 썩히는 것도 생각했지만, 파벨리치가 질라스도 함께 넘겨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기에 티토와 세트로 넘기기로 했다.
질라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어쩌겠나. 빨갱이 짓을 한 본인을 탓해야지.
스탈린 정권이 저지른 대표적인 만행인 우크라이나 대기근 당시 굶어 죽은 사람들을 집단매장한 장소들에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굴라그는 군용 막사로 쓰기 위해 개조한 곳들을 제외하고 그대로 남겨두라고 지시했다.
미래 세대에게 스탈린 독재정권이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미래의 유럽인들은 이곳들을 견학하면서 빨갱이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자세하게 배우게 될 걸세. 물론 학교에서도 교과서를 통해 수업하겠지만 역시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는 것만 못하지 않겠나.”
“아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글을 읽는 것과 실물을 직접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예상컨대 여기서의 굴라그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스탈린 독재정권이 저지른 참혹한 인권유린의 생생한 증거로. 같은 의미에서 루비얀카에 있는 NKVD 본부도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자유 러시아 측에서 새로 창설된 자국 정보기관 본부로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참고로 자유 러시아 공화국 정보기관의 명칭은 국가보안위원회(Комитет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KGB)라고 한다…….
자기들 딴에는 볼셰비키 시절의 명칭이자 지금도 소련에서 전속 중인 NKVD와 최대한 거리를 두기 위해서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서 처칠과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본래 역사에서 처칠은 갈리폴리를 비롯한 온갖 실책을 저질렀음에도 히틀러에게 끝까지 맞서 저항한 결과 독일의 2차대전 승전을 막아-사실 이게 보통 공로가 아니긴 하다-영국 최고의 정치인이자 위인으로 존경받았다.
위인전이랑 영화도 여러 개 나왔고.
스탈린은 처칠과 비교해서 욕을 좀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2차대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을 미국과 견주는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두꺼운 팬층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영국과 소련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영국은 독일의 괴뢰국으로 전락했고 소련은 이름만 그대로일 뿐 해체되어 시베리아 영토만 간신히 함유한 상황.
과연 여기 사람들은 처칠과 스탈린에게 어떤 평가를 할까? 확신하는 데 그리 좋은 평가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히틀러와 나치가 자행한 수많은 만행에도 네오나치 같은 친구들이 꾸준히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모르지만.
이름만 거창하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전무했던 국제연맹도 결국 스스로 해체되었다.
미국이 만들자고 주장해놓고, 정작 미국은 가입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국제연맹의 미래는 예견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원국이 같은 회원국을 침공하는데도 영혼 보내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던 기구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론 오스트리아, 체코를 잇달아 합병하고 폴란드를 침략해 국제연맹의 해체에 큰 공을 세운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고로 국제연맹 본부가 있던 스위스에선 국가사회주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게 뭔 소리냐고?
말 그대로 스위스 내부에서 나치당 추종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말이다.
1940년에 설립된 스위스 국민운동(Nationale Bewegungs der Schweiz, NBS)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SS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들은 매일같이 정부에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스위스를 제외한 전 유럽이 독일의 수중에 들어간 현재 스위스 홀로 중립국으로 있는 것보다 독일의 우산 안에 들어가 여러 혜택을 받는 것이 정치, 경제, 안보적으로 더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NBS의 주장에 동조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덕에 스위스 정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우리야 스위스가 추축국이 되면 좋고, 중립국으로 남아도 손해 보는 일이 없는지라 스위스에 딱히 터치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스위스 입장에서는 이조차 불안한지 우리에게 은밀히 접촉을 시도해왔다.
독일에 각종 경제혜택을 줄 테니 불가침조약을 맺어달라고.
그렇게 독일-스위스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지만, 여전히 스위스는 내가 국방군에게 스위스 진군을 명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날마다 국방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지금도 스위스 국경 일대에선 스위스군이 벙커를 만들고 참호를 파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중이라고 한다.
웃기는 건 스위스군이 사용하는 무기 상당수가 독일에서 수입해 온 물건들이라는 점이다.
스위스 공군의 주력은 독일제 Bf109와 Fw190에, 육군은 4호 전차와 판터, 헷처를 굴리고 있다.
최근에는 티거 II를 구매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고.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제 무기를 사들이는 스위스와 정작 스위스 침공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독일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
모스크바에서의 재판은 총통의 뜻에 따라 속도를 내고 있었다.
처칠, 스탈린 등은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관들은 일말의 여지없이 사형을 언도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예료멘코는 25년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사형과 종신형은 피했지만 25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자 예료멘코는 절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가 받은 25년간 노동교화형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저는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폭격기 조종사로서 적의 도시에 폭격하는 것이 제 임무였을 뿐입니다. 군인이 어찌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피고의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 군사시설도 아니고 민간인들이 사는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린 게 어찌 군인의 본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범죄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들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고요.”
“사형, 사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찬성합니다.”
판사들의 합의에 따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공로로 해리스에게서 훈장을 수여받은 폭격기 조종사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저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사형을 선고받자 절망한 조종사는 판결에 항의했지만, 경비병들에게 붙들려 재판장에서 퇴장당했다.
폭격기 조종사들은 대체로 사형, 혹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행동이 전쟁범죄였다고 진솔하게 인정한 이들은 선처받아 10년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마저도 소수에 불과했다.
포로 학대 및 학살로 기소된 이들은 대부분 사형을 선고받았다.
전쟁 기간 내 추축군으로 변장하고 각종 작전을 수행해 온 특수부대원들도 스파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중형을 선고받았다.
장교급은 대부분 사형을 선고받았고 병사 및 부사관 계급의 인원들은 특별한 전쟁범죄 혐의가 있지 않은 한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겉으로 보기에 재판이 단순한 패자들에 대한 승자의 복수라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 이전 스탈린이 저질렀던 각종 범죄의 생존자들도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해서,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제 아버지께선 저희 가족이 먹을 감자를 훔치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현장에서 즉결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제 두 여동생은 결국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살고 싶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만약 제가 우만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저 또한 머잖아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대기근의 생존자들이 나와서 대기근 당시의 참혹한 모습들에 대한 증언을 쏟아냈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 거리, 감자 한 톨을 차지하기 위해 일어난 살인,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미쳐버린 사람들과 죽은 자식의 살과 뼈로 수프를 만들어서 먹던 사람들…….
로코트 자치국의 수장이자 자유 러시아군 소속 카민스키 군단을 이끄는 카민스키도 재판에 증인 자격에 참석했다.
과거에 스탈린의 집단 농장화 정책을 비판했다가 NKVD에 체포되어 굴라그에 수감된 바 있던 카민스키는 굴라그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피고석에 앉은 스탈린을 조소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상상해보십시오! 이 악독한 공산정권이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빨갱이들이 저지른 범죄들은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면서 세상은 피에 물들고 있었을 겁니다!”
스탈린의 수족으로 수백만 정치범들을 체포, 처형해왔던 NKVD 요원들과 스메르시 요원들도 줄줄이 재판장에 끌려 나왔다.
그들도 일관되게 자신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거나 선처를 호소했지만, 이러한 논리를 질릴 대로 들은 재판관들은 피고들의 애원을 비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여기 네놈에게 고문당하고 억울하게 옥살이했다는 증인이 있다! 증인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네놈의 얼굴과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디서 거짓말을 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 쓰레기들은 같은 인간으로 취급할 수 없다! 파렴치한 범죄자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납으로 된 총알뿐!”
사형, 사형, 사형, 종신형, 사형.
재판에 회부된 이들 가운데 무죄 방면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나마 석방된 이들도 자신의 옛 상관, 동료들을 배신하는 대가로 자유를 선고받았다.
최소한 거래라도 해볼 수 있었던 자들과 달리 처칠, 스탈린 등의 거물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가치가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나치는 거래의 여지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독방에 갇힌 사형수들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