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삼합회의 허베이지부장, 리신페이는 오래간만에 허베이를 나섰다.
그의 행선지는 베이징北京.
삼합회의 수장, 산주山主가 있는 곳이었다.
리신페이는 10층 정도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봤다.
산주가 가진 돈과 권력에 비하면 초라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거처였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상념에 잠겨 있던 리신페이가 건물 입구로 걸음을 옮기자, 정장을 입은 우직한 인상의 경호원들이 다가왔다.
“어르신을 뵈러 왔다.”
“예. 잠시 몸수색이 있겠습니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놓고 가야 한다.
그리고 산주를 대면하기 위해선 무기 이외의 물건들도 전부 맡겨야 했다.
“확인되셨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리신페이는 유일하게 남은 소유물인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뚜벅. 뚜벅.
커다란 덩치의 경호원을 따라 승강기에 올랐다.
경호원이 산주가 지내는 최상층의 버튼을 누르자 승강기가 움직였다.
우웅- 띵.
최상층에 도착한 뒤, 경호원을 따라 복도를 걸어 산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금으로 된 용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어찌 보면 오만하다고 할 수 있는 커다란 문이 그를 반겼다.
똑똑똑.
경호원이 문을 두드리니, 인터폰 같은 곳에서 불이 들어왔다.
그걸 본 경호원은 미리 누가 방문했는지 전달해 놓은 듯이 곧바로 문을 열었다.
덜컹.
리신페이는 혼자서 집무실로 들어갔다.
“왔느냐.”
“예. 어르신.”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피는 노인.
그를 본 리신페이가 눈매를 좁혔다.
탁.
돋보기안경을 벗어 내려놓은 노인이 말했다.
“그래. 어쩐 일로 온 게냐.”
“안부도 전할 겸, 이런저런 일로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놈이 퍽이나. 이 늙은이가 언제쯤 죽나 확인하러 온 거겠지.”
“역시 예리하십니다.”
“앉아라. 배은망덕한 놈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산주를 본 리신페이가 황급히 다가갔다.
“부축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이놈아. 저기서 차나 한잔 내와 봐.”
“그럽지요.”
리신페이는 결국 산주를 소파까지 부축한 뒤에 차를 가지러 갔다.
“뭐로 드시겠습니까.”
“국화.”
“예.”
달그락.
마지막으로 만난 게 2년 전인데, 그때에 비해 확연히 쇠약해진 게 눈에 띄었다.
살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빠졌고, 억지로 멀쩡한 듯 행동하는 게 느껴졌다.
‘작은 거인’이라 불리며 삼합회를 진두지휘하던 그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탁.
선반에서 찻잔을 꺼낸 리신페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
* * *
호정기획 빌딩의 최상층.
그곳에 있는 넓은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
그들은 모두 각계의 상부에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내로라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놈은 언제 오나.”
재계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양진그룹의 회장, 양진원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박광훈은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오실 겁니다.”
“바쁜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이봐, 박 사장.”
이번에 불만을 터뜨린 사람은 국정원장 차영규였다.
“이건 너무 예의가 없다고 생각 안 하나?”
박광훈이 뭐라 대꾸하려던 그때, 커다란 문이 열렸다.
덜컹!
그리고 한 젊은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를 본 차영규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저벅.
성큼성큼 다가온 이주혁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둘러봤다.
“오랜만입니다.”
“늦었군.”
이주혁의 인사말에 차영규가 차갑게 답했다.
하지만 이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열었다.
“사과라도 하는 게 맞지 않나?”
차영규의 불쾌한 표정을 본 이주혁은 봉투에서 꺼낸 종이들을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프린터가 말썽을 부려서요.”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건가.”
“우선, 다들 이걸 봐 주십시오.”
이주혁은 차영규의 어이없다는 듯한 중얼거림을 무시하곤 사람들에게 서류를 한 장씩 나눠 줬다.
“이게 뭐지?”
양진원의 물음에 이주혁이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으며 말했다.
“이번에 제가 구상한 조직입니다.”
“조직이라.”
양진원은 주름진 눈으로 서류의 내용을 살폈다.
“특수수사국?”
“예. 경찰청 산하에 신설하려고 합니다.”
그걸 들은 경찰청장 이기성이 헛웃음을 지었다.
“난 처음 듣는 소린데.”
“그러실 겁니다. 여기서 처음 공개하는 사안인지라. 일단 한번 읽어 보시죠.”
“범죄와의 전쟁 이후로 잠잠하던 조직폭력배들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약을 거래하며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타국의 범죄자들과 결탁하여…….”
내용을 쭉 확인하던 이기성이 서류를 툭 내려놓았다.
“잡설은 됐고, 결론은 이거 아닌가? 자네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사 조직을 하나 꾸리고 싶다.”
“상당히 요약된 표현이지만, 그렇습니다.”
“그래. 조폭들 때려잡겠다는 취지도 좋고 다 좋은데, 하나만 묻지. 이걸 만들어서 얻을 이익이 있나?”
그 말에 다들 이주혁을 쳐다봤다.
그들로서도 가끔 더러운 일에 조폭들을 써먹곤 했기에, 이주혁이 이런 안건을 가져온 의도가 궁금했다.
그때, 조용히 서류를 훑어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선별이구만.”
그가 운을 떼자, 다른 이들은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노인의 정체가 바로, 행정부의 2인자인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예. 맞습니다.”
이주혁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덧붙였다.
“제가 구상한 특수수사국의 역할은 간단합니다. 이 대한민국 땅에 있는 조폭들을 잡아넣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남겨 둘 조직들을 선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 잘 듣고 입맛대로 움직이는 놈들만 남겨 두자?”
이기성의 물음에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나쁘진 않아.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말이야, 예전에 주철수 그놈도 비슷한 의도로 밀어줬거든. 그런데 자네가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지 않았나?”
“맞습니다. 원래 목적은 말 잘 듣는 개를 키우는 거였지만, 주철수는 항상 양지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폐기당한 겁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나.”
“그런 기미를 보였을 때 갈아 끼우면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광훈이 한 마디를 얹었다.
“이주혁 씨의 SA시큐리티는 충분한 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들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입니다.”
딸깍.
수첩에 메모를 하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SA시큐리티라는 곳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죠.”
대원일보의 사장, 민재형이 이주혁을 향해 물었다.
“예전에, 선생이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SA시큐티리에 대해 악의적인 기사를 내서 이미지를 훼손해라. 그래서 난 당연히 선생이 당신을 매장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선생의 후임자라고 나선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상해서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민재형은 볼펜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신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소립니다.”
그에 이주혁은 내심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그때 있었던 일은 그동안과는 달리 자신과 민지훈이 공개적으로 대립한 사건이었다.
다른 일들은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이건 대충 넘어가면 더 의심을 살 것이다.
특히 민지훈의 5촌 당숙인 민재형이라면 더더욱.
“흐음…….”
“하실 말씀이라도?”
민재형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던 이주혁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꾹. 꾹.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바쁩니까?”
-…….
“내가 당신 뒤를 이어 모임을 주도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 …….
스윽.
이주혁이 민재형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받으시죠.”
“뭡니까?”
“어서요.”
민재형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숙.
“서, 설마?”
-예. 접니다.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죠.
그 말을 들은 민재형이 입을 벌렸다.
“네가 맞구나…….”
-이주혁 씨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 어지간하면 하자는 대로 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민재형은 전화가 끊긴 걸 확인한 뒤 다시 핸드폰을 돌려줬다.
“……이렇게 직접 통화까지 했는데 믿지 않는 것도 고집이겠지요.”
“의심이 해소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자 양진원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물었다.
“민 사장.”
“아, 예. 회장님.”
“그놈이 뭐라던가.”
재계의 거물, 양진원 회장은 민재형으로서도 대하기 조심스러운 인물이었다.
“이주혁 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지간하면 하자는 대로 하라더군요.”
“음.”
양진원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의 보증이 있다면 상관없겠군. 조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조병철 비서실장도 수긍한다는 듯 말했다.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네. 특수수사국? 그게 있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이득이지요.”
조병철은 이주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말일세. 이 특수수사국의 역할은 그게 끝인가? 각하께 보고드리려면 그럴싸한 명분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이주혁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대통령의 뒤에 숨어 조용히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해외 폭력 조직 척결……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들까지 건든다는 소린가?”
“그래야죠. 사실 우리나라의 조폭들은 세가 많이 죽었습니다. 그 탓에 물 건너온 놈들이 뒷골목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스윽.
이주혁이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선언했다.
“신설될 특수수사국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타국의 범죄 집단까지 타도할 것입니다.”
* * *
그 뒤로 인원은 누구로 배정할 건지, 조직은 어떤 형태로 편성할 건지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사실 인선은 내가 이미 생각해 둔 사람들이 있어서 밀어붙였다.
조직의 형태야 뭐, 아무래도 크게 신경 쓸 만한 문제는 아니고.
어쨌든 안건이 수월하게 받아들여져서 다행이다.
중간에 민재형이 갑자기 트집을 잡으면서 공격하길래 당황할 뻔했는데, 민지훈이 눈치껏 대처해서 다행이었다.
‘박광훈, 이 새끼는 왜 쓸데없이 SA시큐리티를 언급해선…….’
내가 슬쩍 노려보자, 박광훈이 눈썹을 까딱하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됐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다 몸을 일으켰다.
모임이 파해 회의실에는 박광훈과 나밖에 없었다.
“가시는 겁니까?”
“가야지.”
오늘 설명한 인선 중 일부는 바로 데려올 자신이 있었지만,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모임이나 선생에 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을 나름의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또 발품 팔아야겠구만.’
과정이 조금 귀찮긴 해도, 결국엔 필요한 일이었다.
“다음에 또 뵙죠.”
“어.”
결국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호정기획 최상층의 회의실을 나섰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겠네.’
과연 그 양반도 내가 반가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