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3
261화. α (10)
물론 진실을 모르는 마도 탑 입장에선 유희성 흥미만을 가질 뿐.
적이 웃는다.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들은 이 순간까지도 눈앞 마도사의 역량을 알아채지 못했다.
머릿수가 이렇게나 차이가 나니 그저 수월히 이길 수 있겠다고 예측했다.
게다가 학술당 도착 전. 자신들은 주황색의 피가 흐르는 귀족 뇌를 분석해 상대 가문의 비기 마법을 훔쳐내기까지 했으니.
이제 이쪽은 정신을 후벼파는 것 외에도 육체적인 강인함마저 갖췄다!
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다가올 현실이란 차갑고 비정한 성질이었다.
일당백.
이 자리에는 사전 속에서나 헤매던, 그 지나친 단어를 실현한 자가 있었던 것이다.
-…다들 그거 알아? 나는 평소 숨 낭비를 썩 좋아하지 않아.
이내 흐르는 평이한 어조.
이곳의 알파우리인들은 서로 동족지간인 만큼 적어도 언어는 통했다.
-따라서 단 한 번만 고지할 테니 되묻지 말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시작한 녹색 마법사 쪽에게 대화할 의지가 있었다고 보기엔…….
-지금 당장 이 학술당에서 꺼져.
세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이 해역을 완전히 뒤덮는다.
그럴 무렵 새카맣게 물들어 전혀 윤곽이 보이지 않는 저 땅의 끝에서부터 목소리가 울렸다.
연직 방향의.
어느 암석 위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수컷 동포가 내뱉은 음파.
-셋을 세기 전에 이 해역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너희와 너희의 조상이 평생을 지켜온 위대한 보물을 이 세상에서 깡그리 없애버릴 테다!
녹색의 그는 이제 매우 공격적인 목소리를 냈다.
-뭐? 보물? 무슨 보물?
하지만 마도 탑 측의 반응은 싱거웠다.
그들은 제대로 된 비강도 없는 족속들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이곳에 퍼져 있는 까만 물의 정체는 정신에 듣는 약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특제 매직 부스터나 다름없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는 몰라도 상대는 그 특제 약품에 피부가 온통 노출됐는데. 이쯤이면 정신력의 수준에도 상관없이 슬슬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전쟁 영웅 나리! 네 녀석이 그러기 전에 우리가 이곳 자식들을 다 죽여버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이 진동을 잘 들어보라고. 방금도 멀리서 나약한 학술당의 대마법사 하나가 쓰러졌잖아.
-하하하, 접경 국가의 수준이 고작 이런 것일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침략할 것을.
-살파, 그 노인은 어디에 있느냐.
-학술당의 정신적 지주!
-살파가 숨은 곳을 불면 우리야말로 자비를 베풀어 편하게 죽여주지.
-미천한 심해 출신의, 오만한 놈!
와글와글와글와글.
고작 몇 밀리초(millisecond) 만에 정보가 쏟아진다.
외국의 알파우리인들은 사방팔방에서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녹색의 학술당원은 소리에 민감한 만큼 이를 분류해 듣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어진 다른 위협마저도 너무나 태연하게 넘겨버렸다는 점이다.
-하나.
왜냐하면, 이쪽은 마도 탑의 고유 약품에 노출되고도 계속해서 멀쩡했으니까.
원래 이런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선 그것만큼 효자인 요술도 없다.
한데 아쉽게도 이쪽은 아직 성에 찰 만큼의 술식 개량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저런 무뢰한들에게는, 소 잡는 칼 같은 거창한 것보다 살짝 작은 무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둘…….
물속에 잠긴 저 외국인들은 과연 상상이나 해봤을까.
지구의 시간으로는 자그마치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그들이 매달려 완성한 신종 주술. 정신 세뇌.
그것이 이 젊은 마법사에게 고작 몇 분 사이에 파훼됐단 사실은, 그들은 아마 알게 되더라도 숫제 부정할 것이다.
그만큼 이 해역의 심해인은 충격적인 존재였다.
자신 외의 모든 천재를 모조리 우매함의 봉우리로 몰아넣는 실로 부당한 사변이라니.
-엇?!
이윽고 남자의 술식이 발동한다.
마도 탑 무리의 중심에 떠 있던 술사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것은 제 몸의 부력을 조절해볼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아래쪽으로 끝없이 낙하했다.
염동력으로 인해 탈것에서 힘으로 끌려 내려왔던 아까의 동포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뭐야, 무슨 일인……!
아니, 잠깐만. 그나저나 저쪽은 아직 셋도 다 안 셌는데?!
마도 탑의 적군들은 녹색 청년이 거짓말을 했음에 2차로 놀란다.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굳이 짚을 만한 특이점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마법은 캐스팅이라 불리는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한데 이런 조건 안에서 상대 술사의 혀가 갑자기 길어졌다면 대개 한 가지 목적에 수렴하니까.
-이미 늦었어, 네 녀석들 전부!
이쪽은 [마나 번]의 제작자이다.
아무리 술식 구조를 공개했다 해도 아직 이 세상에 그보다 마나 번의 원리를 잘 이해한 학자는 없었다.
따라서 이런 기예도 결국 그 하나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는 어느 주황색 동류의 조언에 따라 스스로를 보호할 아주 강력한 방법을 강구해뒀으니.
-저 빌어먹을 심해인 자식이 감히 거짓말을!
-잠깐, 설마.
-아아아, 다들 멈춰. 지금 부탑주님의 몸에서……!
그가 행한 것은 마나 번의 독창적 개조다.
-부탑주님의 몸에서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녹색의 마법사는 범위를 대상으로 하던 베타성인용 술식을 완전히 개혁하여 단일 대상을 쏘아 맞혔다.
그리고 그가 완성한 신종 병기는 시작부터 두려운 위용을 자랑한다.
위성전 당시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전장에 나설 때마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적대 국가의 대마법사가…….
-꺄악!
-으아악.
고작 청년의 손에 사망한다.
온몸의 연료가 흩날려 사라진 마법사의 최후란 비참한 것이었다.
이 무리의 대장 역할을 하던 적보라색 알파우리인은 마력 장벽이 무너진 대가로 삽시간에 절명한다.
정확히는 녹색 피를 가진 학술당원이 적이 약해진 틈을 타 평소 쓰던 수작을 부렸다.
투명하게 빛나는 타인의 젤라틴층을 통째로 터트려 버렸다.
-신이시여!
사실 지구에서도 이런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SF를 배경으로 하는 슈팅 게임에서 에일리언을 총으로 맞히면 보통 저렇게 점액을 흩뿌리는 모습이 나타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포유류의 시각에선 대체 뭐가 잔인한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아예 해양 생물로 태어난 이 자들에게 있어선 그보다 끔찍한 광경이 달리 없었다.
마도 탑의 무리를 이끌던 리더가 전쟁 영웅의 마법에 맞고 폭발하듯 죽었다.
예고 없이 시작된 스플래터 공포물에 뇌에 충격을 입는 적군들.
그리고 이런 잠깐의 틈은, 미래의 대마법사 예정자에겐 넘치도록 충분했으니.
-그나저나 내가 아까 물러나지 않으면 너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없애버리겠다고 했었지?
마치 비소 염료처럼.
위험스런 녹색을 띤 마법사가 이내 그들에게 전했다.
-내가 방금 말했던 보물이란 바로 네 녀석들 몸이 대대로 담아왔던 유전자다. 이 빌어먹을 것들아. 내가 수억 년의 생식이 허사로 돌아가는 꼴을 기필코 보여주지.
참고로 이번에 내뱉은 긴 마디의 문장은 시전 시간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아름다운 바다에 네 녀석들 같은 개체는 필요 없어!
그는 이맘때에도 마법의 묵언 발동이 가능했기에.
***
…이후의 비정한 전투야 굳이 낱낱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다.
소란이 끝났다.
전쟁 영웅이 가장 위협적인 중심가의 소대를 상대하는 사이. 다른 지역에서도 필사의 분전이 이어져 싸움은 제법 빠른 속도로 정리됐다.
-음? 이 작자는 어딜 갔었나 했더니.
-경비까지 죄다 당했구려.
-아까비~
그 과정 속에서 학술당의 우두머리인 살파가 죽는 안타까운 사태가 있었지만….
이곳은 이성적인 이들이 많이 모인 장소이니만큼,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슬픔은 오래가진 못했고.
-대체 무너진 건물 층만 해도 몇 개요, 전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닫자마자 마도 탑원 중 몇몇은 우리 자료를 들고 도망치기까지 한 모양인데.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나의 가여운 문하생들은, 끝내 시체째로 몸을 강탈당했어요! 그들이 자료와 함께 내 제자들을 훔쳐 갔다고요!
-이 도둑 새끼들!
-추적을… 해야 하는데.
-저들이 베타성의 기술을 끝내 분석했구려. 마음먹고 마법을 쓰면 거의 바다를 접어 달리는 수준이니 솔직히 잡을 방도가…….
곧이어 갖은 논의가 흐른다.
그런데 이때. 바다 한쪽에서 갑자기 쉬익, 쉬익 하는 소리가 흘러들었다.
평상시에는 대충 바닥에 붙어 걸어 다니기나 하던 게으른 학자가 수관에서 물을 뿜어가며 빠르게 접근하다니.
-오, 전쟁 영ㅇ…….
게다가 나타난 학자는 4개의 부촉수를 모두 사용해 야무지게 짐까지 든 상태였다.
-잠깐, 이런 정신 나간 작자가! 어른들 간 떨어지게 하려고 작정했나!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꼴이랍니까.
-우린 생물 마법 전공이 아니라고요~
-어린 학술당원들이 카데바를 못 보겠다고 할 때 그들을 나약한 것들이라고 헐뜯곤 했는데. 과거의 내 행동이 수치스러워지는 순간이군.
그야말로 적장의 수급을 베어왔다는 소리에 어울리는 모습.
녹색 마법사는 자신이 쓰러트린 마도 탑의 무리 안에서, 그나마 강해 보이던 술사 넷의 시신을 끌고 들어왔는데.
알파우리처럼 장례 문화가 간소한 행성에서 굳이 남의 시체를 거둬왔다는 건 대부분 모종의 이유를 동반했다.
-아무튼, 그 더러운 것들을 왜 여기까지 끌고 온 거요?
역사 속에 함무라비 법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지능이 높은 종족이 동태복수법을 모를 리는 없잖은가.
-뇌.
-뭐라고?
-이들의 뇌를 뒤져보면 우리 쪽도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져왔지.
-그건….
-마도 탑은 도망칠 때 보통 어떤 경로를 이용하는지라든가, 아니면 비상용 은신처의 위치라든가.
-그런 걸 알 수만 있다면야 나도 여섯 팔 걷어붙이고 당장 나서고 싶구려.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남의 머릿속 따위를 우리가 대관절 어떻게 분석한단 말이오. 그것은 마도 탑이 속한 적국만의 고유 기술력이오.
-….
-우리나라에 있는 뇌에 대한 정보란…. 뭐, 기껏해야 맛있는 치어를 먹이면 실험용 해파리의 특정 뇌엽에 전류가 많이 흐르더라는 둥 겉핥기식 결과뿐.
-하하.
-전쟁 영웅. 당신은 [감정 장악] 관련해서 나름의 기교가 있다는 듯하오만, 그것도 결국 따져보면 약리학에 기반을 둔 개조라는 거 다 알고 있소. 실제로 신경은 단 한 줄도 자르지 못한 주제에. 대체 그런 시체들 따위로 뭘 하겠단 거요?
나이 든 알파우리인은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따졌다.
우리네들은 점잔을 떠느라 생체 실험 자료가 이웃 국가보다 한참 달리지 않느냐. 굴욕적이긴 하나, 어쨌든 그 부분만은 우리나라 기술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게 현실이다 등등.
하지만 전쟁 영웅은 그 모든 설교를 듣고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젊었고, 능력이 있었고.
따라서 매사가 자신감에 차 있었기에.
-그 말은 지금 나보고, 아둔한 마도 탑도 가능했던 일을 감히 못 해낼 거라고 하는 건가?
모두가 일순 숨을 삼킨다.
-내 지능 수준을 작심하고 마도 탑의 아래로 평가했냐고.
패기만만한 태도.
젊은 전쟁 영웅 측이 이렇게 나오자 학술당원 일동은 섣불리 새로운 문장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기세 하나로 주변인들을 찍어누른 지 얼마나 됐다고, 문제의 화자가 곧바로 자신을 낮춘 발언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이렇게는 말했지만, 솔직히 아무런 기반 없이 바로 뇌를 분석할 엄두가 나지 않네. 맞아. 확실히 우리나라엔 그런 마법에 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지.
최근 몇 년간은 골렘 마법의 연구. 그리고 영생 도모회의 활동만으로 충분히 공사다망했었으니까.
이 녹색의 학자는 알파우리인의 신체에 대해 그다지 특출나게 아는 바가 없는 편이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이 학술당에 온 저의가 다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별이 내린 천재라도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겠어.
아쉽지만 이번 일만은 정말이지 다른 방법이 없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좀 데려와.
그는 주황색 부호가 과거에 꺼냈던 전언을 어기고 특정한 협력자를 부르기에 이른다.
-■▒, 상류층의 심복이자 이 국가에서 가장 고등 생물의 뇌를 많이 까봤을 그 탐구자를 당장 이 중앙으로 데려오라고. 생체 마법의 일인자인 그 녀석이라면 뭔가 방안이 있을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