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4
262화. α (11)
매일같이 가죽을 바꿔입으며 기행을 일삼는 개조 주력의 마도학자를 찾아오라니.
하지만 확실히 이런 사태에선 그만큼 활약할 지식인도 없을 터.
그런데 방금의 이야기에서 나온 ■▒가 어디에서 발견됐는지 아는가?
-아니, 이 쌍것아!
문제의 학자는 이곳을 방위하지 않고 홀로 내빼려다 적군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정확히는 붕괴한 결계선 바깥까지 달아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근처를 맴돌던 마도 탑원에게 걸려 4개의 부촉수를 모두 잃었다나 뭐라나.
학술당원들은 힘을 합쳐 핍박당하던 ■▒를 구출해온다. 하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아무리 체통이 없기로서니 설마 이 난리통에서 나 몰라라 도망을?
-이보십시오. 이미 죽은 적군 뇌를 분석할 게 아니라 일단 저치 대가리부터 좀 까보지요?
-미친 것아!
긍지 높은 학술당의 연구자가 이딴 이유로 신변이 상할 줄이야.
원성이 터져 나온다.
대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지금은 아직 사회가 도덕이나 의무를 잊지 않은 시대였기에, 자리에 모인 학자들이 상대를 일제히 타박했다.
그리고 도망자 본인도 이 상황을 부끄러워하긴 했다.
■▒는 중위 귀족의 자손으로서 여러 대를 거쳐 이 학술당에 몸을 담근 인물이었는데.
목숨까지 걸고 베타성의 진군을 막은 선조와 달리, 이쪽은 저 하나 살자고 도망치다 그게 딱 걸렸으니.
-이잉.
당연히 떳떳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울림통 닫고 멀뚱히 욕만 들어먹기에는 이쪽도 나름대로 억울한 데가 있었다.
-겨, 겨우 이런 일 가지고 뭘 그리 야박하게 타박들이십니까. 나는 엄밀히 말하면 댁들 편이 아니라, 국가에 모든 걸 바친 몸이라고요!
오늘은 새카맣고 불투명한 가죽을 걸친 미지의 학자가 높은 소리로 외친다.
-학술당은 어디까지나 실험 장비를 대준다기에 입적한 것일 뿐. 나는 실상 우리나라의 지도자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리는 것도 당연한 법. 내가 죽으면 나라는 누가 굴리고 민생은 또 누가 살핀단 말입니까!
파닥파닥.
마도 탑에 공격당해 이제야 막 새로 나기 시작한 촉수 뿌리를 흔들어 젖히는 학자.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 괴짜의 호소에 집중하지 않았다.
일개 감정 표현 따위를 신경 써주기엔 응급 상황이기도 했고, 일단 저런 겁꾸러기는 근본적으로 꼴 보기가 싫었다.
-‘저렇게 몸이 상했는데도 격추한 적의 수는 무려 0에 수렴한다니.’
그리고 이 순간.
녹색의 전쟁 영웅은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짧게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주황색 마나님의 말을 귀담아듣지 말 걸 그랬나.’
타고난 체내 마나도, 다룰 줄 아는 마법의 속성도.
게다가 가문 대대로 쌓은 지식을 살려 잘린 촉수도 복원하는 회복약을 개발해낸 상대방의 그 모든 업적이, 이쪽의 눈에는 그저 하찮은 수준으로 보일 뿐.
명명백백한 한계.
역시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저 나약한 괴짜가 영웅을 이길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저 괴짜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본 대부분의 알파우리인이 그랬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무력에 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슴 속에 있는 편이었는데.
왠지 어떤 동포를 만나도 질 것 같다는 느낌이 안 들었고, 누군가와 맞붙어보면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터라.
-‘약해~ 단순히 힘만 달리면 모를까.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도망친 꼴을 보니 저건 용기까지 없네.’
쌓을 수 있는 공적이 촉수 끝에 채듯 널렸던 대전쟁 시기에도 딱히 이름을 알리지 못한 마법사.
이 정도면 괴짜 알파우리인 동포는 씨름이나 술래잡기 따위로 현재의 직위를 따냈을지도 모르겠다.
녹색의 마법사는 이 일을 계기로 눈앞의 술사를 완전히 허섭스레기로 평가했다.
하지만, 별은 자비로우니 다행히 저런 천하의 얼간이에게도 뒤져보면 구르는 재주가 있는 상황.
-뭐 아무튼. 지금은 촉수를 회복하는 중이기도 하니 따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 넘쳐나는 시간을 나와의 대화에 좀 써달라고. ■▒.
-대화요?
-유감스럽게도 당신에게서 받을 도움이 좀 생겼거든.
녹색의 마법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이후의 대화 흐름이 제법 의외였다.
-아아, 그러니까. 전쟁 영웅님의 말은 이 적국 녀석들의 뇌에서 쓸만한 정보를 뽑아내고 싶다는……?
워낙 비루한 몰골로 등장해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역시 그 괴짜도 학술당의 일원인 만큼 나름 자기 분야에서만큼은 날고 기었으니 말이다.
-물론 가능합니다.
-뭐?
-나는 평소 연구하던 전공 분야상 주검의 머리에서 기억을 읽어내는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요. 매우, 매우, 단편적일 테지만.
-오.
-아무렴 생물 뇌쯤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까서 봤지요. 한데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술법이 반은 미완성이라. 안정적인 적용을 위해 앞으로 800번가량의 추가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괴상한 가죽을 둘러쓴 지도자의 보좌관이 말한다.
-그런데 뭐, 우리 학술당에는 자그마치 나라에서 셋째로 마력이 많은 재능자가 있는데. 이게 걱정거리가 될지요?
-흠.
-정보를 얻고 싶다면 내 실험에 협력해주세요. 이미 그려진 마법진에 마력만 800번 흘려주면 됩니다.
-잠깐, 그렇다면 내가 그쪽의 진법 설계를 보게 되는 건데?
-뭐……. 솔직히 가문의 요령이 집약한 기술을 남과 공유하는 건 썩 기꺼운 일이 아니지마는. 그래도 당신이라면 괜찮습니다.
-?
-바로 적의 시체를 끌고 따라오세요. 상태가 좋다면 여덟 국면 이상의 생전 기억을 강탈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라.
마도학자라는 족속이 이렇게까지 흔쾌히 제 성과를 공유할 수가 있나?
괴짜의 발언에 이 자리의 전부가 놀랐다.
개중에는, 그렇게 쉽게 보여줄 거라면 혹시 자신도 마법진을 구경하러 가도 되겠냐고 묻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갑기만 했고.
-꺼지시오. 내가 댁에게까지 정보를 공유한다고 이 나라에 당최 무슨 득이 있다고? 나는 단지 저 녹색 동포가 전쟁의 대영웅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의 참관을 허락하고 있는 겁니다.
-….
-그 같은 천재라면 내 지식을 흡수해서 장차 더 훌륭한 성과를 낼지도 모르잖아요.
지금까지는 말 한 번 나눠보지 못했던 가죽갈이의 학자가, 이윽고 심해인을 향해 감정을 표현한다.
제법 우호적인 존경심이었다.
-이건 반쯤은 나의 개인 우대이기도 하니 다들 그와 같은 대우를 바라진 마십시오.
-말도 길군!
-아까는 촉수가 빠지도록 도망친 주제에!
-비겁자야!
-그, 그건 내가 실수했으니 이제 좀 봐주시고….
그렇다면 논의도 끝났으니 일을 미뤄봐야 뭐 하랴.
■▒와 ▒▒.
이윽고 학술당의 두 학자는 동업에 나섰다.
멀쩡한 뇌만 있다면 자신도 얼마든지 마도 탑처럼 정보를 훔칠 수 있다니.
학술당의 일원들은 괴짜의 말을 한동안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보여준 성과에 다들 곧 입을 다물었다.
-다들 굽쇠 가져와요. 소리가 아주 넉넉히 저장되는 걸로. 어서!
단지 가죽갈이로 유명하던 괴짜 학자는, 술식 구조가 잘 보이지도 않는 컴컴한 마법을 몇 번 부리더니 이내 정말로 죽은 자의 기억을 뽑아냈으니까.
그 괴짜가 숨기고 있던 건.
남의 뇌가 기억하고 있는 각종 소리를 허공에 무작위로 펼쳐내는 기술.
바닷속에 혼잡스러운 소음이 퍼진다.
-비명 외에도 이것저것이 섞여서 쓸만한 정보를 가려내는 건 시간이 좀 들 것 같소만…….
-이게 어디랍니까.
이 과정으로 학술당은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①도망친 그들의 분산 아지트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②적국의 마도 탑 본관은 어떤 방식의 결계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짜배기다.
그렇다면, 이만큼 비밀도 알아냈겠다 더는 학술당 안에서 촉수만 빨고 있을 필요가 없을 터.
녹색의 마법사가 이후 어떤 조치를 했는지 아는가?
***
며칠 뒤.
이웃 국가의 중층 해역.
…어차피 실상을 따져보면 이어진 상황은 죄다 평면적 승리의 반복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해역에서 벌어진 사건은 굳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우선, 마도 탑은 무너졌다.
적국에 세워진 마도 탑이라는 기관은 기실 바다의 상층과 중층 지대를 모두 잇는 km 단위 높이의 어마어마한 거대 구조물이었는데.
이게 어느 날 선뜻하고 부러졌다.
말 그대로 옆구리가 터져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당연히 이 대사건에는 간소한 음절의 이름으로 유명한 그 녹색의 전쟁 영웅이 관련됐던 터라.
-끄아아!
-초, 초대장도 없는 것이! 이 결계 안을 대체 어떻게!
생체 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동포 괴짜의 도움을 받아, 습격자들의 정보를 캐내기까지가 사흘.
그리고 학술당의 재보를 훔쳐 달아난 마도 탑원의 도주 습성을 분석해, 한 지하 동굴에서 발견한 그것들을 모두 새 실험체 신세로 만들기까지가 약 나흘.
-살려주세요!
-너희 같으면 그런 짓을 한 도둑을 살려주고 싶겠니?
미래의 대마법사 후보는 도망친 마도 탑원을 붙잡는 과정에서 모국의 알파우리인을 몇 개체 발견한다.
타국에서 흘러들어온 무뢰배가 제 나라의 아기들을 짐승 밀렵하듯 추가로 납치한 정황이 포착됐던 것이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게다가 힘까지 없던 가여운 집안의 아이들을 이렇게 멋대로 업어왔다고?
-남아있던 정까지 다 떨어지네.
녹색 학자는 피가 잠시 짙은 색이 됐다.
열이 받은 것이었다.
-동족의 시체를 가져다 쓰려면 먼저 동의를 받았었어야지! 그리고 사자의 바람을 양심적으로 하나쯤은 이루어줘야지.
-히익!
-그게 우리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이잖아. 어?
만약 타 행성인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남자가 분노한 지점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생체 연구에 자원하는 것들은, 보통 제 몸의 살코기와 뼈를 다 팔아서라도 가족을 배불리 먹이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란 말이야.
어쨌든 그는 이례적일 정도로 짜증 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된 대가도 내지 않고 약자를 잡아다 쓰는 경우가 늘면 차차 모든 학자가 신뢰를 잃어버릴 테지. 나중엔 나까지 손해를 입는다고! 그걸 너희가 책임질 수나 있어? 에라이, 씹새끼들. 안 그래도 요즘 견본이 부족해서 유기 골렘 연구가 더뎠구만!
-뭐, 뭐라는 거야. 이 미친… 끄아아악!
이어진 것은 잔인할 정도의 폭력.
하지만 어차피 저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니. 이 정도 복수는 정의에 가까울 터였다.
-이웃 해역의 잡것들아, 이딴 비윤리적인 실험 체계는, 내가 친히 두 번 다시 꿈꾸지 못하게 해주마!
이상의 이유로 녹색의 마법사는 며칠 뒤 국경선 너머의 마도 탑 본관에 직접 행차했다.
사건의 근원인 마도 탑을 이참에 쳐내지 않으면, 사상 자체가 불온한 해당 단체가 언제든 같은 사태를 일으킬 거라 판단한 탓이었다.
예고 없이 탑의 범위 안으로 살기등등한 기세로 난입한 전쟁신.
그는 얼마 안 가 마도서, 굽쇠, 수정구 등을 포함한 이곳의 모든 무기물을 직접 파괴하기에 이른다.
-안 돼! 내가 공들인 자료가……!
-꺅!
-30년을 모아서 산 내 비싼 도구가!
제 행보를 막아서는 같잖은 적군은 모두 갈라 죽였다.
적국의 비기 마법인 세뇌는 술식의 귀재가 불과 한 번의 눈짓으로 낱낱이 파훼해버려서 아무런 효용이 없었고.
-꺼, 껍질. 내 몸 껍질이!
-왜 숨이 막히는…….
-마법이 안 나와!
양성소에서 말하길.
마법사 간의 싸움은 본래 생물과 병마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하던가.
마법전은 흘러가는 전투 양상이 백신 개발과 닮은 편이다.
어느 한쪽이 강인한 마법을 짜내면 적이 이를 끙끙대며 분석하고.
특정 술식이 고유의 위협성을 잃어갈 시점에는 다시 신종 무기가 세상에 등장하는 식.
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보통은 최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다.
한데 이번만큼은 녹색의 마법사가 그저 모든 걸 압도했다.
심해인이 직접 개선한 [마나 번]의 새로운 형태는 몇 번을 봐도 따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식 구조가 난해했기에.
전성기 시절의 ▒▒는 힘으로는 막힐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야, 여기 책임자 나오라 그래!
반투명 마법사가 울부짖었다.
서방에서 온 알파우리인은 엄청나게 셌다.
마도 탑원이 다 덤벼도 코웃음을 치며 건물을 짓밟고, 아무튼 그런 마법사가 울부짖었다.
-으악 망할 도망가자.
이에 적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