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히히힛.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퀴스케가 배를 잡고 웃었다.
-형은 정말 대단해요. 다른 사람들은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
여러모로 이색적인 존재다.
천해선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타의 다른 마인과 달리 체구가 작고 어리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마치 자신이 인간이라도 된 것인 양 말이다.
‘어쩌면…….’
저 어려 보이는 모습도, 인간으로 다시 성장하고 싶은 바람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천해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왜 그래?”
천해선이 투기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사일리아가 옆구리로 그의 팔을 툭 쳤다.
“쫄았냐?”
그녀의 질문에 천해선이 피식 웃었다.
“응.”
“응? 응이라고?”
사일리아가 기가 막힌단 표정을 지었고, 천해선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솔직히 어떻게 이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자연재해와 싸우는 기분이야.”
“……그 정도야?”
사일리아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릇으로는 퀴스케의 강함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해선이 이렇게 죽는소리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혹시 네가 죽게 되면 WHPO는 내가 맡지.”
“?”
천해선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던졌다.
사일리아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보통은 내가 죽으면 가족을 부탁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냐?”
“그렇게 말했다간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반대로 말한 거야.”
“대밋. 그래도 농담할 정신은 있나 보네.”
코웃음을 쳤지만, 그녀는 내심 안도했다.
천해선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평정심을 찾았다 느낀 것이다.
“나도 약속하지. 네가 죽으면 네 누이와 마리아에게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해 주겠어.”
“……왜 마리아야?”
“엥. 그럼 비수였어?”
“아니. 둘 다 아닌데?”
“빌어먹을 바람둥이 같으니. 너같이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니까 여자들이 고통받는 거라고.”
사일리아가 혀를 차며 양손에 힘을 주었다.
연애 고자를 쥐어 패기 위함은 당연히 아니었다.
천해선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든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야흐로,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또 뭘.”
사일리아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천해선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첸은 남자냐, 여자냐?”
“낄낄.”
천해선이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은 뒤, 그녀에게 작은 귓속말을 남겼다.
“갓 댐…….”
곧 사일리아의 진한 쌍꺼풀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부우우우웅.
몸 안의 메루스를 활성화시키자 뜨거운 고양감이 솟구쳐 올랐다.
어떤 힘든 상대라도 메루스를 접하면 투기가 끓어오르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거대한 재해를 앞에 두고 암담했던 천해선은, 굳은 각오를 새로 새겼다.
“큰 거 하나. 작은 거 둘. 어떤 거 할래?”
천해선의 질문에 사일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난 잔챙이는 상대 안 해.”
사일리아가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들었고, 그녀의 뾰족한 턱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이테룸이 있었다.
“좋아.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해선과 사일리아가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큰 것과 작은 것은 다름 아닌 남아 있는 ‘마인’을 지칭한 것이었다.
서열 네 번째의 과트룸과 ‘달’에 해당하는 하위 마인들은 전장에 나간 상태.
세 번째 테르티가 이미 처치된 이상, 남은 ‘해’의 마인은 총 세 명이었다.
서열 두 번째의 이테룸.
다섯 번째의 ‘퀸툼’.
여섯 번째 ‘바우’.
천해선은 두 번째와 싸울 건지 퀸툼+바우를 상대할 것인지 물어봤던 것이다.
그리고 사일리아는 두 명의 마인을 ‘잔챙이’라 칭하며 이테룸과 싸울 것을 천명했다.
-…….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마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었다.
특히나 ‘훼방꾼’이 아닌 일개 헌터가 자신들을 ‘잔챙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넘어 진득한 살의가 피어올랐다.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러나 오만하게 지껄인 것과 달리, 사일리아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저 괴물 같은 놈과 달리 자신은 한 번에 두 명의 마인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눈앞의 한 명을 조져 버리는 것이 속 편한 일이었다.
“하아압!”
일렁이는 마력 덩어리를 항해서, 사일리아의 카테나가 빛을 번뜩였다.
* * *
“허억……. 허억…….”
입술 아래로 흐르는 피를 거칠게 닦으며, ‘글로리 길드’의 대표 정수민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표님. 선택하셔야 합니다.
“가만있어 봐!”
날아오는 발톱을 힘겹게 막아 내며 정수민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천해선과 사일리아가 대열에서 이탈해 퀴스케 쪽으로 진격했고, 잉센은 ‘엑스키’ 상태의 마인을 상대하느라 피똥을 싸고 있었다.
현장에서 전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다음 타자는 글로리 길드의 수장, 정수민이었다.
물론 해외에서 온 헌터들 중에서는 정수민보다 훨씬 강한 능력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는 이곳은 한국 땅이었고, 정수민은 무력보다 지략이 더 뛰어난 인재였다.
정수민은 마물들의 공격과 헌터들의 구조 요청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빌어먹을 년. 그렇게 홀라당 가 버리면 어떻게 해?’
정수민은 WHPO의 총재 사일리아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천해선과 사일리아가 사라진 지금 전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사실 정수민도 알고는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사일리아의 판단 미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새카만 구름 아래 발동되는 차원 간섭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참사였다.
인간의 힘이 실시간으로 약해지는 반면, 마물들은 구름 아래 번쩍이는 에너지를 양분 삼아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전쟁 초반 효율적인 전투로 이득을 봤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요. 빼야 합니다.
“기다려 봐!”
평소 정수민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뒤로 물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뒤로 가면 어디를 간단 말인가?
어차피 오늘의 전쟁에서 패한다면 더 이상 인류에게 희망은 없는 것이다.
죽더라도 여기서 죽고, 살게 된다면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이다.
-대표님!
그래서 정수민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검은 구름을 피해 대열을 뒤로 물린다는 건, 천해선을 포기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에잇!! 싯팔!!”
두뇌 회로가 타 버릴 만큼 갈등하던 정수민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버텨! 시발 놈들아! 버티라고! 천해선과 그 망할 총재 년이 마인 모가지를 따 올 때까지 버티란 말이야!”
자신의 쌍검을 필사적으로 휘두르며 정수민이 마물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한 마리를 베면 또 한마리가, 그 뒤로는 두 마리가 버티고 있는 실정이었다.
번뜩이던 정수민의 쌍검은 어느새 이가 잔뜩 빠졌고, 검은 구름 밑에서 싸우느라 에테르는 고갈되어 버리고 말았다.
“허억…… 허억……. 컨트롤 타워. 현재 상황은?”
-전체 병력의 약 70%가 사망했거나 전투 불능 상태입니다.
절반이나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정수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그는 하늘 위의 검을 구름을 바라보았다.
아래에서 펼쳐지는 전투가 무색하게, 구름은 점점 검게, 그리고 넓게 퍼지고 있었다.
투명한 물컵에 검은 잉크가 퍼지듯, 인간계의 기운을 암흑 물질이 침투하고 있었다.
여기서 전장을 물린다면 마계의 기세가 더 퍼지게 될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사방에서 죽어 가는 헌터를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마음속으로 천해선을 떠올린 정수민이,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철수…….”
“하지 마.”
“하지 마. 뭣?”
엉겁결에 뒤에서 들린 말을 따라 한 정수민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누가 감히(?) 이 전쟁의 지휘에 대해 함부로 끼어들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인물 중에선 없었다.
그러나,
“다, 당신은.”
정수민의 앞에 선 남자는 그래도 되는 인물이었다.
애초에 누구의 말도 듣기 싫어 어둠의 시장을 선택한 인물이니까.
“철수하지 말라고 했다.”
시원하게 깐 상반신에는 강건해 보이는 근육과 셀 수도 없이 많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몸에서 내뿜는 기백은 마인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그 남자를 한번 본다면 얼굴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야차……!!”
“나름대로 잘 버틴 것 같군.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라.”
“우리……?”
야차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고는 오른손가락을 튕겼다.
-캬아아아아악!
-크워어어엉!
정수민이 깜짝 놀라 양어깨를 움찔했다.
언제 접근했는지, 등 뒤에서 마물의 포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정수민은 재빨리 이가 빠진 자신의 쌍검을 곧추세웠다.
“엇……?”
그런데, 마물들의 상태가 어째 좀 달랐다.
무지성으로 밀어붙이는 녀석들과 달리, 그들은 출격 대기라도 하듯 제자리에서 땅바닥을 긁고 있었다.
심지어 마인들조차 컨트롤하기 힘들어하는 ‘키메라’들까지 말이다.
“오. 저게 바로 암흑 물질의 원천인가.”
야차가 고개를 쳐들어 검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가만…….’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정수민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냐고 따지고 싶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야차의 뒤에는 수천 마리의 마물들이 포진해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부터 마물이건, 누군가 불러낸 마물이건.
암흑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가 아닐까?
게다가 지금은 퀴스케가 발동시킨 ‘차원 간섭’ 때문에 마물들의 위력이 한층 강해진 상태였다.
“당신……. 설마 처음부터 이걸 예상하고?”
정수민의 질문에 야차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단순히 늦잠을 잤을 뿐이다.”
야차는 그렇게 말하며 직접 네발 달린 마물의 등 위에 올라탔다.
“마음껏 들이마셔라, 나의 자식들아. 눈앞에 노다지가 있다. 크하하하하!”
-캬올!
야차의 광소와 함께 마물들이 일제히 검은 구름 안으로 뛰어들었다.
터무니없게도, 검은 구름 안쪽으로 들어간 마물들은 야차가 불러냈을 때 이상으로 비대해졌다.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족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
으적.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마치,
백마 탄 왕자님 같군.
암울했던 전황에 희망을 준 야차.
마물의 등에 올라타 적을 학살하는 야수를 보며 정수민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품었다.
* * *
“아저씨!”
강정현의 비통한 목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친다.
더 이상은 무리라 생각한 듯, 강정현이 아니마 꽃밭을 불러들이려 했다.
“안 돼!”
육철완이 묵사발이 된 얼굴로 강정현의 행동을 저지했다.
“지금 여기서…… 헌터들에게 메루스를 전달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하지만…….”
잔뜩 물먹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강정현.
그는 지금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육철완과 옥티엔스 간의 싸움.
처음에는 승산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랏빛 섬광이 내려온 뒤로 전황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다룰 수 있는 메루스의 양이 제한적인 것은 물론, 차원 간섭 때문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퍽 퍽!!
강정현은 육철완의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는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아니마 꽃을 회수하고 살상용 식물을 꺼내 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육철완과 비수는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강정현에게 버프를 걸어 주는 비수가 앙다문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
비수와 육철완이 강조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우당탕.
그러나 결국 육철완은 땅에 처박혀 의식을 잃고 말았다.
태생이 약했던 헌터였던 점을 감안하면 여기까지 버틴 것만도 박수를 쳐 줄 만한 일.
그러나 전쟁터에서 패자가 받을 수 있는 건 박수가 아닌 ‘죽음’뿐이었다.
-어지간히도 걸리적거리는군.
내내 침착하던 옥티엔스에게서 거친 말투를 끄집어낼 만큼, 육철완은 끈덕지게 버텼다.
“아직도…… 참아야 돼요?”
강정현의 말에 비수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옥티엔스의 발이 육철완의 얼굴을 짓뭉개기 일보 직전이었다.
참지 못한 비수가 버프의 종류를 바꾸었다.
“빌어먹을! 아니마 회수해! 저 새끼를 찢어 죽일 만한 놈으로 불러!”
강정현이 알았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에 먼저 들려왔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