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어흥!!
사나운 포효를 감지한 옥티엔스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목소리는 마계의 생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그가 목소리의 근원지를 떠올려 볼 새도 없이, 집채만 한 회색 호랑이가 태양을 가린 채 뛰어들었다.
쿵!!!!
아무리 퀴스케의 영향력 아래 있다지만 옥티엔스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차에 커다란 앞발이 그의 몸을 후려치자, 옥티엔스는 속절없이 뒤로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러니까…….”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비수가 자신의 기억력을 더듬었다.
“대…… 대범이!! 대범이 맞지?!”
요염한 외모와 달리 죽상이던 비수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대범이.
임페리얼 타이거는 비수와 강정현을 향해 그르렁거렸다.
혹자가 보기에는 몹시도 위협적인 광경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더없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 혹시. 너만 온 거야?”
임페리얼 타이거는 대답 대신 고개를 쳐들었다.
뽀리와 격전을 벌이는 마인들 사이로 어느새 ‘치킨’이라 불렸던 영계의 수호령이 참전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크롸롸롸롸롸롸!
크라수스 드래곤이 ‘엑스키’ 상태의 마인과 ‘괴수 대격돌’을 찍고 있었다.
“다들…….”
비수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양 볼을 감쌌다.
수호령들만 보내겠다던 당초의 약속과 달리, 적지 않은 수의 영물들이 마물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비수의 반응이 무안했는지 임페리얼 타이거가 앞발로 자신의 코를 긁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인간계까지 주저앉아 버리면 영계도 풍전등화가 될 테지.
“그래도…… 고마워……!”
-고마우면 그걸 내게도 넘겨라, 인간.
“에……? 그거라니?”
호랑이의 커다란 고개가 강정현 쪽으로 넘어간다.
-천해선이 그러더군. 영계의 아니마와는 달리 우리 수호령도 사용할 수 있는 아니마 꽃이 있다고.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생각을 길게 할 여유는 없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졌던 옥티엔스가 자신의 몸을 털며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현아!”
“네!”
비수는 강정현에게, 강정현은 다시 임페리얼 타이거를 향해 ‘비’들을 날려 보냈다.
-비이.
메루스를 받아들인 임페리얼 타이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 수천 년을 함께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힘의 원천인가…….
임페리얼 타이거의 눈이 잠깐 동안 아련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곧, 그의 동공이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변했다.
* * *
-모든 전…… 상황…… 급속…… 호전…….
퀴스케의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 걸까.
컨트롤 타워에서 보내 주는 무전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나 드문드문 들려오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전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암시장의 총수.
임페리얼 타이거.
드래곤.
타이밍 좋게 원군이 도착하면서 잠시나마 밀렸던 전세가 다시 인간들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이곳’에서의 전투만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면, 몬스터가 창궐한 이래 최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울컥.”
문제는 ‘이곳’의 전황이 생각보다 암울하다는 데 있었다.
‘해’ 두 명을 상대하는 천해선도, 이테룸 하나를 상대하는 사일리아도 무척이나 애를 먹고 있었다.
특히나 사일리아는 헝클어진 머리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 꽤나 낭패한 모습이었다.
상급 헌터를 ‘엑스키’ 상태까지 몰아붙였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했지만, 마인에게는 ‘체력’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저 빌어먹을 애새끼 때문인가.’
달리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전투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오히려 마인들의 기운이 더 강대해지는 것 같았다.
이 말도 안 되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왜 저 애새끼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일까.
이테룸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그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성미에 안 맞아.’
사일리아는 부서지도록 이를 갈았다.
그녀는 다소 무책임한 결론을 내렸다.
눈앞에 이 빌어먹을 놈만 해치우고, 뒤는 천해선에게 몽땅 맡기겠다는 결론을 말이다.
‘힘들어 보이지만 나보다는 사정이 나으니까.’
사일리아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무한에 가까운 그녀의 에테르가 메루스와 반응해 주변에 풍압을 형성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질려 버릴 법한 기세였지만, 이테룸은 언제나 그랬듯 비웃을 뿐이었다.
-소용이 없다니까.
이테룸이 암흑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밀도’였다.
극한으로 밀도를 높인 암흑 물질로 사일리아의 카테나를 수도 없이 자르고, 끊어 버렸다.
어찌나 많은 암흑 물질을 응축시켰는지, 메루스를 담은 카테나조차 튕겨 낼 정도였다.
두 명의 마인을 상대하고 있는 천해선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릴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메루스마저 상대할 수 있는 마인.
그것이 바로 엑스키 상태의 이테룸이었다.
펄럭펄럭.
날갯짓을 하며 공중에 떠 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전투 상황에 따라 놈은 자신의 위치와 형태를 이리저리 변형하곤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받아야 할 때면, 암흑 에너지의 밀도를 높여 카테나를 부서트렸다.
카테나 자체가 에테르 덩어리여서 망정이지, 만약 실존하는 금속이었다면 부서진 잔해가 산처럼 쌓여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카테나를 만들어 내는 사일리아도 사일리아지만, 전혀 지치지 않는 이테룸 또한 신의 영역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네 누이. 잘 지켜 줄게.”
사일리아가 좀 전에 나누었던 반어법(?) 인사를 나누며 한 발을 주욱 뻗었다.
‘오르비스(Orbis)’
춤을 추듯 회전하는 사일리아의 몸에서 두 개의 카테나가 회전하며 뻗어 갔다.
휘리리릭.
이테룸은 조소를 띄운 얼굴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다.
마치 일부러 농락이라도 하듯 아슬아슬한 차이로 카테나가 스쳐 지나갔다.
촹!촹!촹!촹!
이번에는 이테룸이 반격할 차례.
놈의 손이 마치 삼단봉처럼 늘어나며 사일리아의 목을 향한다.
사일리아가 필사적인 움직임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서걱.
간신히 목이 날아가는 건 막았지만, 사일리아의 한쪽 머리칼이 뭉텅 날아가 버렸다.
반쪽은 어깨를 덮는 장발.
그리고 나머지 반은 단발로 변한 사일리아가 바닥을 향해 피를 토했다.
이제는 정말로 체력이 다한 것일까.
대미지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일리아의 컨디션이 급격히 무너졌다.
그러나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사일리아의 눈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붕붕붕붕.
출수했던 오르비스가 이테룸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쩌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테룸은 유감스럽다는 듯 히죽이며 고개를 꺾었다.
이미 한차례 당한 기억이 있는 터라 패턴을 읽은 것이다.
오르비스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테룸은 등을 돌려 날아오는 카테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울컥.”
등 뒤에서 다시 한번 불쾌한 역류 소리가 들렸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날아오는 오르비스를 쳐 내고,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사일리아의 목을 따 버리면 끝이었다.
부우우웅.
이테룸은 바로 여기서 결정적인 착오를 일으키고 말았다.
사일리아는 힘이 다해 피를 토한 게 아니었다.
바닥의 바닥까지 에테르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타난 부작용일 뿐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양손에는 ‘오르비스’보다 더 빛나는 카테나가 달려 있었다.
차르르륵.
-?
회전하며 날아오던 카테나가 돌연 서로를 향해 마주친다.
두 개의 체인이 서로 합쳐지며 타격 범위를 한 곳으로 좁힌다.
사일리아가 양손으로 사용하는 기술.
‘컴바인드 체인(Combined Chain)’으로 형태를 변형한 것이다.
-잔재주를…….
이테룸이 반대편 손을 마주 뻗었다.
그로서도 두 손을 마주 합쳐야만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착오가 생기고 말았다.
‘컴바인드 체인(Combined Chain)’
촤르르르륵.
산송장이라고 생각했던 사일리아에게서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사슬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오르비스’로 출수한 사슬이, 뒤에서는 그녀가 새로 만들어 낸 사슬이 동시에 이테룸의 몸을 급습했다.
-!!!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이테룸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입술 사이로 피가 주룩 흐르면서도 사일리아의 눈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충격과 메루스라면 절대로 막아 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일리아의 충혈된 눈이 돌연 경악으로 물들었다.
부우우웅.
카테나와 같은 색.
또 하나의 황금색 기운이 양쪽으로 뻗어 나와 그녀의 카테나를 후려친 것이다.
쨍!!!
귀가 시린 소리와 함께 회심의 공격이 모두 이테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맙소사…….”
한때 희망의 빛이 보였던 사일리아의 눈이 절망으로 범벅이 되었다.
좀 전에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메루스의 주인은 천해선의 것이 아니었다.
새롭게 나타난 메루스의 주인은 다름 아닌…….
-헤헤.
퀴스케였다.
털썩.
최후의 비기가 허망하게 날아가서일까.
비수가 무릎을 꿇었다.
바다같이 넓었던 에테르는 고갈이 되었고, 에테르는커녕 이제는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다.
“하하……. 이럴 수가…….”
빨갛게 충혈된 사일리아의 눈가에 붉은 눈물이 번졌다.
메루스를 사용할 수 있는 마인이라니.
천해선이 몰고 온 황금색 기운은 마인들을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데 조금 전, 퀴스케는 분명히 메루스를 발동시켰다.
달리 말하자면.
에테르. 암흑 물질. 메루스.
그 어느 것 하나 퀴스케에게 약점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비 스트라이크’
콰과과과과과과광.
천해선이 마인 하나를 처치하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퀴스케가 메루스를 사용한 것을 보고 적잖이 무리를 한 것이다.
더 이상 퀴스케를 염두에 두고 메루스를 아껴서 마인들과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사일리아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이테룸은 여전히 멀쩡했다.
“야……. 나중에 일어나면…… 설명 좀 해 주라.”
사일리아는 그렇게 요청한 뒤 눈을 감았다.
진작에 기절하거나 폭주를 해도 전혀 이상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일리아는 정작 폭주를 할 에테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천해선이 사일리아의 앞을 막아선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앞에는 ‘해’에 해당하는 마인 두 명과 퀴스케가 버티고 서 있었다.
-해선이 형.
‘형’이라는 말에 이토록 소름이 끼칠 수 있을까.
퀴스케가 배시시 웃은 뒤 설명을 시작했다.
-왜 제가 당신만 형이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인간의 삶을 닮고 싶어서 그런 건가?”
-헤헤. 천만에요.
헤실거리던 퀴스케의 표정이 돌연, 악귀처럼 변했다.
-이 땅에는 순 버러지들뿐인걸요.
“……!”
-제가 형을 형이라고 부른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가 같은 ‘종’이기 때문이죠.
“종?”
퀴스케가 한차례 히히덕거린 뒤 말을 이었다.
-저어기 있는 드래곤이 알려 주지 않았어요? 형은 인간이 아니라고.
“!”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크라수스 드래곤은 나와 키릴을 향해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아, 물론 껍데기는 인간이 맞겠죠. 하지만 형은 사람들이 말하는 ‘포이즈너’ 같은 게 아니에요. 나와 같은 ‘태초의 종’인 거죠. 인간, 마인, 이딴 개념이 아니라는 거에요.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퀴스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거 알아요? 태초에 우리는 여기 바닥에 있는 지렁이 같은 종에서 출발했어요. 실지렁이보다 작은 미약한 종부터요. 그때부터 각자가 생존에 필요한 방식으로 주변 것들을 먹어 치우며 살아간 거죠.
천해선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는 퀴스케의 말을 듣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안주머니를 더듬어 보았다.
-그중에서도 메루스를 다룰 수 있는 종은 모든 차원을 뒤져 봐도 흔치 않아요. 저와 형, 그리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헤헤.
최강의 헌터가 되고 나서도 풀리지 않던 의문.
왜 어렸을 때 그렇게 지독한 독에 중독되어 살았던 건지, 천해선은 이제서야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뒤지게 아팠구나. 껍데기만 인간이었으니까.”
-헤헤. 맞아요. 그러니까 형. 가족끼리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어린 마인이 턱 하니 한쪽 손을 내민다.
명백한 동맹의 제스처.
주변에 있던 동료 마인들조차 흠칫 놀랄 만한 제안이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퀴스케. 인간에게 동맹을 제안하다니……!
-닥치고 있어요.
퀴스케는 이테룸을 향해 빙긋 웃었고, 그의 몸에 일렁이던 암흑 물질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어때요, 형? 고고한 척하는 영물들도 사실은 우리보다 훨씬 하등한 종족일 뿐이에요. 가족끼리 네 개의 차원을 모두 지배하면, 재미있지 않겠어요?
천해선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땅바닥에 누운 사일리아, 그리고 저 멀리 피 튀기는 전장을 둘러 살펴봤을 뿐.
히죽.
천해선이 퀴스케를 향해 웃었다.
그러고는 어린 마인이 했던 것처럼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