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with the King’s Power RAW novel - Chapter 690
2부 106화
무수한 시간선을 여행하던 요마는 깨달았다.
그의 세계가 한 성좌의 도피처로 탄생했으며, 하나의 성좌가 탄생하기 위해 무수한 생명체를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걸.
삼천세계를 창조한 노네임.
용과 요마는 그의 조각을 지닌 선택받은 존재였다.
그들이 성장한다는 건 삼천세계에 뿌려두었던 가능성을 회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에 그 한계도 명확했다.
삼천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합해도 그 한계는 상급 성좌까지였다.
대단한 격상이지만 그 정도로는 별자리 전쟁을 막을 수 없다.
결국 언젠가 대성좌들 누군가에게 고개를 조아리게 될 운명.
회귀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 앞에서, 요마는 한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김태현. 삼천세계의 포식자.
노네임이 아닌.
자신이 선택하여 성좌가 된 자.
“그에게 내 가능성을 넘기면 어떻게 될까?”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시의 탑주. 노네임의 또 다른 조각은 당황했다.
그 모습만으로 요마에겐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운명을 거스른다’는 이명은 쉽게 손에 넣은 게 아니야.”
말문을 잃은 노네임의 앞에서.
요마는 웃으며 결정을 내렸다.
“내 가능성을 녀석에게 넘기겠다.”
* * *
요마와의 마지막 만남을 정리한 탑주가 그리 말했다.
회귀한 요마가 어째서 중급 성좌밖에 되지 못했는지.
드디어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가능성을 넘겼다라….”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나에겐 상급 성좌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탑의 100층을 정상적으로 모두 클리어하면.
요마가 원하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
태현의 물음에 탑주가 고개를 저었다.
“…….”
이리 되면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요마가 자신을 위해 가능성을 양보한 것도 실패한 도박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오류(誤謬).
탑주는 자신의 회귀를 그리 단정 짓고 있었다.
하계왕 시절이 아니라 건국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돌아간 것도.
포식이 봉인당한 것도.
이그문이 성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소멸되었을 때 아스모데우스가 힘과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도.
모든 게 오류로 인해 발생한 변수라 말했다.
스륵.
그가 손을 휘두르자 눈앞에 성력으로 이루어진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곳에 태현이 있었다.
곧바로 탑에 들어오지 않고 중간계에서 입지를 다져 나가는 태현.
마력 컨트롤과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 세계 랭킹 1위의 플레이어가 된 미래.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안정적인 성장 방법이었다.
그리고.
탑을 기반으로 다른 차원의 중간계와 교류를 이어가던 어느 날.
푸욱.
돌연 습격한 복면인들과의 교전에서 태현은 목숨을 잃었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홀로그램을 이루던 성력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펼쳤다.
혈마신교에 장악당한 무림의 신한국 습격.
하계를 장악한 아스모데우스의 중간계 침공.
5층에 진입한 후 대공과의 전투 중 사망.
이그문과의 격전 중 아바타 시스템의 폭주로 인한 자멸.
종족 전쟁을 치르던 중 루시퍼의 배신.
어떤 선택을 해도 태현의 끝은 죽음에 닿아 있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두 번째 회귀는 꼬여 있었다.
요마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거란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요마를 구하지 못하는 건가.”
괴이(怪異). 시조새와 대등한 대성좌의 격을 지닌 존재.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성좌를 수집하여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 다시 조립한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게 재탄생한 성좌는 기존과 다른 정체성을 지니며 괴이에게 복종한다고.
여러모로 좋지 않은 평가가 무성한 녀석이다.
하필 요마가 끌려간 곳이 녀석의 영역이라니.
태현의 얼굴이 굳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것도 요마의 계획에 있던 건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태현이 무리하여 성력을 충돌시키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탑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요마를 구할 수 있는 선택지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궁금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요마를 살리고 싶어 하는지.
“듣기로는 삼천세계의 유일신을 죽인 게 용과 요마라던데. 그쪽 입장에서는 요마가 죽든, 용이 괴이와 붙어먹든 알 바 아니지 않나?”
탑주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웃음에 씁쓸한 감정이 실렸다.
“…….”
하하하하.
탑주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변수가 확장되는 기분이다.
“삼천세계 곳곳에는 노네임의 조각이 흩뿌려져 있다네. 나는 그중 대부분의 조각이 합쳐진 존재라네.”
십이지의 권능이 만들어낸 영향이며, 삼천세계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태현과 알맞은 형태로 합쳐진 형태라 하였다.
“톨킨은?”
태현이 여전히 호민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불쌍한 난쟁이를 보며 물었다.
“톨킨 말고도 많을 텐데. 무력을 지닌 대공들. 또는 신한국의 플레이어들 같은.”
그들이라면 톨킨이 아니더라도 관리자 역할을 하는 데 무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 부정하지 않았다.
회귀하고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스킬로 인해 가능성이 제한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탑의 호민관.
그녀의 역할은 탑에 들어온 모두에게 대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
퀘스트 ‘판도라의 열쇠’와 스킬 ‘판도라의 상자’.
판도라의 상자는 다른 이들이 태현의 존재를 파악하기 힘들게 한 건 물론, 5층에서 호민관의 시선을 돌리는 역할을 했다고.
탑주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즉.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하다.
설마 톨킨이 했던 일들이 자신의 생존에 그 정도의 영향을 끼쳤을 줄이야.
당장 호민관에게 달려들어 친우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그들은 탑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나누었다.
이외에도 하계는 톨킨이, 상계는 호민관이 담당하며 탑주는 삼천세계 모두를 관장하고 있다고.
탑의 관리자는 총 열 명이며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파견 중일 때가 많다 하였다.
회귀를 종료하고 바깥으로 나가 요마를 구할 것인지.
이대로 탑을 계속 올라 상급 성좌의 격을 넘어서 볼 것인지.
탑주가 태현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를 강조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자리 전쟁은 끝내지 못할 것이다.
융합 우주의 누군가가 대성좌가 되지 않는 이상, 별자리 전쟁은 가망이 없다.
‘용. 빌어먹을 녀석이…. 일을 그르치는군.’
그때.
태현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탑주. 그런데 말이야.”
“나는 몸이 두 개란 말이지.”
“그래. 그렇게 한다면 어느 쪽도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
어째서 이 간단한 선택지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어째서?”
본래라면 두 개의 육체를 지니는 것 같은 건 불가능한 일이다.
포식자의 힘을 회복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탑주는 할 수 있잖아?”
탑주는 흩어진 노네임의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
그가 다루는 성력이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창조(創造). 그 힘이라면 도플갱어의 육신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거 같은데.”
지금은 태현의 심상에 봉인당해 있지만.
본래 도플갱어는 태현을 넘어서는 무력을 지닌 존재다.
그런 이에게 육체가 주어진다면?
그에겐 요마를 구하러 떠난 태현의 의무를 대신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삼천세계의 나머지 가능성을 모두 먹어 치워 스스로가 성좌가 되려 할 것이었다.
“도플이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네. 확실히 그 녀석이라면 뭐든 먹어 치워 제 것으로 만들려 하겠지.”
그게 누군가의 가능성이든, 목숨이든.
스스로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을 치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점은 요마보단 용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녀석만 한 적임자가 없지.”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100층에 오르려 할 거야. 이전부터 나와 요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어 했으니까.”
태현이 이루지 못한 중급 성좌의 격. 또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상급 성좌의 격.
그 격을 이룬 순간부터 존재력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김태현이라는 존재의 주체가 도플갱어 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무수한 시간선에 존재하던 김태현은 지워지고, 도플갱어라는 존재만 남게 된다.
그리되면 삼천세계를 기점으로 하는 포식자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최악의 경우 존재 자체가 지워진 포식자는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성좌가 소멸해도 출신 우주 또한 무사하지 못해. 그때 가서 존재나 봉인 운운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지.”
“그럼 이걸로 정해졌네.”
태현은 바깥으로 나가 성좌로서 움직이고.
도플갱어는 삼천세계에 남아 등탑을 계속한다.
요마가 자신을 믿었듯.
“이제는 내가 그 녀석을 믿어줘야지.”
‘그런 것치고는 꽤 험하게 다루던데….’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부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탑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