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309)
남자의 얼굴은 처음과는 달리 무척 창백했다. 남자는 입맛이 없는지 포크질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맛있어?”
끄덕끄덕.
아이는 남자의 옆이 아니라 처음 그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던 베드로에게서 음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흘끔흘끔 부러운 얼굴로 베드로를 보았다.
아이들이 남자에게 가지고 있는 공포와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아이에게는 그 감정이 대부분 호감으로 변해 있었다.
남자의 휑한 눈이 뚫어질 듯 아이에게로 향했다.
나는 생각했다.
‘많이 예뻐졌네.’
남자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로 깨끗하게 씻긴 아이는 천사처럼 귀엽고 예뻤다.
이곳이 좀비들이 들끓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이도 베드로와 다른 사내아이의 손에 이끌려 같이 어울려 나갔다.
식당에 신부와 남자 둘만이 남았다.
신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정말 내일 떠나실 겁니까?”
“그렇소.”
“아무래도 당신의 마음의 병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모양이군요.”
신부가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며 성호를 그렸다.
남자가 말했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오. 난 정리해야 할 일이 있소.”
“정 떠나시겠다면 더 이상 잡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이 데리고 온 저 아이만은 이곳에 남겨 주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침묵했다.
“바깥세상은 저런 어린애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곳입니다. 지금까진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결국은 굶어 죽거나 좀비에게 잡아먹히겠죠.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다릅니다. 이곳에 몇십년은 버틸 충분한 식량과 물이,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게 아이를 맡겨 주십시오.”
고개를 숙이는 신부를 외면하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들은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희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부가 멀어져 가는 남자를 향 해 외쳤다.
방으로 돌아간 남자는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저녁 식사 후 몇 시간이나 지나서야 베드로의 손에 이끌려 방에 돌아왔다.
아이의 머리에 예쁜 붉은 리본이 묶여 있었다.
남자가 베드로에게 물었다.
“이건 누가 준 거지?”
베드로가 살짝 뺨을 붉혔다.
“제가 만들어 줬어요. 이브도 마음에 드는지 제 손을 꼭 잡아 줬어요.”
“이브? 누가 이브지?”
베드로가 아이를 가리켰다.
“우리끼리 부르는 이 애 이름이에요. 혹시 다른 이름이 있어요?”
“….아니.”
남자에게 아이는 그저 아이였다.
아이를 부모를 죽인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 줄 자격 따위는 없다고 여겼으니까.
베드로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계속 이브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베드로가 방긋 웃었다. 그가 아이의 뺨에 입술을 살짝 맞췄다.
“그럼 잘 자, 이브, 내일 또 놀자.”
베드로와 다른 아이는 남자와 아이가 내일 떠나는 것을 모른다. 베드로가 방을 나섰다.
남자가 정리하던 배낭을 추스르고는 아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둘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이곳이 좋으냐?”
희미하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드로가 마음에 드냐?”
끄덕.
남자가 시답잖은 질문을 몇 개 했다. 이곳의 음식은 맛있느냐, 자기 전에 양치를 하고 싶냐 정도였다. 씻는 것 관련의 질문에는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싫다는 표현이었다.
남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아직도…… 날 죽이고 싶으냐?”
아이가 잠시 남자의 눈을 빤히 보았다.
끄덕.
남자의 얼굴에 자괴적인 미소가 깃들었다.
* * *
이른 새벽.
남자가 하수구 구멍에서 기어나왔다.
주위는 아직 어둑하고 공기는 차디찼다.
남자가 좁은 하수구 구멍에서 배낭을 꺼내는 데 잠시 애를 먹었다.
처음과는 달리 남자는 혼자였다.
아이, 아니 이제는 이브는 그가 떠난 방공호에서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이브를 위해 홀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몰랐다.
개의 역할을 대신하던 이브가 없는 밤은 훨씬 더 길고 위험할 것이다.
좀비와 마주치는 일도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허나 왜일까.
지금 남자의 얼굴은 오래된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더할 나위없이 상쾌해 보였다.
나는 배웅하듯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헉, 헉!”
방공호에서 가져온 식량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이라 그런지 배낭의 무게가 버거운지 남자의 숨결이 거칠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남자는 도시 외곽의 언덕에 이르렀다.
주변은 어느새 놀랄 만큼 밝아져 있었다.
남자가 해가 뜨고 있는 동쪽을 흘깃 보았다.
일출의 빛에 감싸여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십자가가 보였다.
교회다. 교회의 망루 위에 있는 커다란 종이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저거였나?” 그날 좀비 떼에게서 그들을 구해 준 기적의 종소리.
내가 일으키지 못했던 기적.
잠시 목에 걸고 있던 총알을 어루만지던 남자가 망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오래전에 신앙을 잃어버린 그지만, 기적의 현장을 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뭔가 참고할 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내 부활 퀘스트를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켜야 했기에.
하지만 우리는 기적 대신 처참
한 현실을 보았다.
“뭐, 뭐냐, 이건?”
남자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날 있었던 것은 기적 따위가 아니었다.
종에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피로 젖은 손자국들이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좀비들에게 처참하게 뜯어먹혀 잔해만 남아 있는 남자아이의 시체가 있었다.
신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곳에서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신부가 말했던 횡액을 당했다는 아이 유다.
“빌어먹을!”
남자와 나의 발걸음이 다급히 에덴이란 이름의 방공호로 향했다.
외전. 완결이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연재합니다 (5)
“허억! 허억!”
남자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은 도중에 내팽개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뒤를 쫓으며 생각했다.
신부는 그날 유다라는 아이를 희생해서 그들을 구했다.
하지만, 대체 왜?
자신이 돌보는 아이를 희생시키면서 그들을 구할 가치가 있었던 걸까?
순간 불현듯 방공호의 이름과 여자아이가 그곳에서 얻은 이름이 떠올랐다.
‘에덴…… 이브?’
에덴, 인류의 기원이라 전해지는 신이 만든 요람. 이브는 그 에덴에서 태어난 최초의 여성.
그리고 신부가 돌보던 11명의 아이 중에서 여자아이는 단 1명도 없었다.
남자가 에덴에 도착했다.
그가 철문에 달린 핸들을 돌렸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남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가 도끼를 위로 힘껏 치켜들었다.
깡! 까가강!
분노한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그가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사납게 불꽃이 튀었다.
끼기기기긱!
마침내 에덴의 입구가 열렸다.
복도에 신부가 남자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떠나신다면서 왜 돌아왔습니까?”
신부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전등 빛에 비춰 황금빛으로 빛났다.
신부의 앞에는 개 목걸이를 하고 있는 이브가 멍하니 서 있었다. 목에 연결된 사슬은 신부의 손에 움켜져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남자가 숨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헉! 허억! 그 애를 내놔!”
“이브는 우리에게 맡긴 게 아니었습니까?”
남자가 대답 대신 노인의 발치에 뭔가를 집어 던졌다. 반쯤 뜯어 먹힌 아이의 팔이었다.
“후, 유다를 찾았군요.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다.”
신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애를 내놔!”
“제 말을 들으면 오해가 풀리실겁니다. 유다는 신앙심이 깊은 아이로 당신과 이브를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부흥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겁니다. 부디 철없는 행동으로 유다의 순교를 망치지 마십시오.”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그날 들었던 종소리를 떠 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 따위가 아니었다.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며 내뱉는 아이의 처참한 비명이었다.
남자가 신부에게 도끼를 겨눴다.
“더 이상 여러 말 않겠다. 당장 그 애를 내놔!”
신부가 고개를 저었다.
“이브는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브는 새로운 인류의 세상을 열 희망이 될 겁니다. 그 이름 그대로 인류의 어머니가 될 거란 말입니다. 바로 제 손으로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이곳 에덴에서!”
“미친 영감이! 죽여 버리겠다!”
서슬 퍼런 기세로 남자가 도끼를 움켜쥔 채 신부에게 다가갔다.
문을 부수느라 날이 많이 뭉개졌지만, 저런 미친 노인 머리통하나 박살 내는 건 어려운 일이아니다.
하지만 남자의 걸음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신부가 이브의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그 흉악한 사탄의 무기를 내려 놓으시오. 지금 당장.”
신부가 손에 힘을 주었다.
칼끝에 찢긴 피부에서 흘러나온 붉은 핏방울이 이브의 새하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새 희망 어쩌고 떠들더니 죽일셈이냐?”
“저라는 울타리 없이 이브와 다른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여자아이는 또 언젠가 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 주님의 숭고한 사명으로 인류의 존속을 지켜야 할 선구자인 저는 다릅니다! 저를 대신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건 너무나 괴롭지만, 주님과 인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미쳤군.”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당신같은 살인자가 어찌 주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어서 무기나 버리십시오.”
남자가 이를 악물며 도끼를 바닥에 내려놨다.
쿵!
“허리에 찬 권총도.”
남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신부의 뒤에는 이 소동을 듣고 온 아이들이 와 있었다.
“시, 신부님? 아, 아저씨?”
신부가 베드로를 향해 손짓했다.
“마침 잘 왔구나. 베드로, 저 사악한 물건들을 치우렴.”
“네, 네?”
“어서!”
“하,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베드로? 또 체벌 방에 갇히고 싶은 거냐?”
베드로가 덜덜 몸을 떨었다. 그가 주저하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죄, 죄송해요.”
베드로가 남자의 도끼를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도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신부를 혀를 차며 말했다.
“도끼는 됐다. 권총만 나한테 가져오너라.”
“네, 네에. 신부님.”
베드로가 권총을 집어 신부에게 가져갔다. 신부가 베드로가 건넨 권총을 받으며 탄창을 살폈다. 가득 찬 탄창을 본 신부의 미소에 저열한 미소가 서렸다.
“이브를 데리고 가렴.”
신부가 이브에게 연결된 사슬을 베드로에게 건넨 후, 남자에게 총구를 겨눴다.
“주님을 모시는 몸으로 살생을 하기는 싫습니다. 지금이라도 당 신의 길을 가십시오.”
신부의 얼굴에 승리자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동안 자상해 보이는 미소 뒤로 남자의 총을 경계하던 신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총은 신부의 손에 있었다.
“……!”
그때 남자의 낯빛이 변했다. 남자가 격하게 몸을 숙이더니 기침을 했다.
“쿨록쿨록! 커헉!”
후드득! 철퍽!
남자의 입에서 흘러내는 핏물이 바닥을 검게 적셨다.
“하하, 독이 이제야 효과를 보이나보군요. 한 번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나름 조심했는데 말입니다.”
식은땀을 비처럼 쏟으며 주저앉은 남자의 모습에 신부가 한껏 더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