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310)
다시 한 걸음.
저벅저벅.
이제 신부와의 거리는 겨우 2미터 남짓.
남자의 눈동자가 늑대처럼 빛났다.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도낏자루에 손을 뻗었다.
신부가 그 모습을 보며 조소했다.
“어리석군요.”
신부가 남자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총성 대신 공허한 쇳소리가 울렸다.
“뭐?”
신부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여전히 울려 퍼지는 공허한 쇳소리.
“분명 총알이 가득 있는데? 왜, 왜?”
남자가 도끼를 지팡이 삼아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의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저 총이 발사될 리는 없었다.
가지고 있었던 탄환은 처음 이브를 만났을 때 그녀의 부모 좀비를 죽일 때 다 써 버렸으니까.
신부가 들고 있는 총의 탄창에 들어 있는 것은 나무를 탄환 모양으로 깎아 페인트를 칠해 놓은 위협용일 뿐이었다.
“진짜 총알은 하나뿐이다.”
남자가 자신이 목에 걸고 있는 총알을 가리켰다.
남자에게 남은 마지막 총알.
하지만 그의 것은 아닌 총알.
신부가 걸고 있는 십자가와 남자가 걸고 있는 탄환이 서로 대비되듯 전등 빛에 빛났다.
남자가 도끼를 치켜들었다.
“오, 오지 마! 이, 이브! 이브를 데려와!”
신부가 등을 돌려 이브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남자가 도끼를 내리찍었다.
콰직! 철퍽!
권총을 든 신부의 팔이 도끼에 잘려 나가며 시뻘건 피가 사납게 튀었다.
“으아아아악!”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방공호 밖으로 도망치는 신부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다.
“거기 서…… 커헉!”
하지만, 다시 폭포처럼 검은 피를 토하더니 의식을 잃었다.
* * *
“아저씨. 정말 가시는 거예요?”
베드로가 울먹이는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걱정 마라. 그 미친 노인은 살아 있지 못할 거다. 부상이 아니더라도 피 냄새에 환장한 좀비들이 가만 놔두지 않겠지.”
남자가 아이들 틈에 섞여 있는 이브를 흘깃 보더니 베드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이브를 부탁한다.”
그것은 처음으로 본 남자의 미소였다.
남자는 이브를 남겨 두고 홀로 에덴을 떠났다.
나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비록 이 세계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이지만,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었다.
“콜록콜록!”
피 섞인 기침을 토하는 남자의 얼굴은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걸음도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남자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남자가 목에 걸고 있는 탄환을 꼭 움켜쥐며 읊조렸다.
“기다려, 금방 갈 테니.”
남자는 낮에는 걷고, 해가 지면 동굴이나 건물 속에 웅크린 채 조심히 숨을 죽였다.
때로 좀비가 나타날 때가 있었다.
남자는 피를 토하며 최후의 힘을 쥐어짜듯 그들의 머리를 도끼로 박살 냈다.
하루가 흐르고, 다른 하루가 온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다른 하루가 다시 찾아온다.
남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거의 소비하고 난 후에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과거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같이 살던 집이었다.
남자가 힘겹게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의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남자가 호주머니를 뒤적여 열쇠 하나를 꺼냈다.
찰칵.
끼이익.
녹이 슬 대로 슨 자물쇠가 힘겹게 풀리며 오랫동안 닫혀 있던 지하실 문이 열렸다.
끔찍한 악취가 풍겼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랜턴을 켰다.
지하실 벽 너머에 박혀 있는 사슬과 그것에 묶여 있는 여자 좀비의 모습이 비쳤다.
-킁킁! 킁킁킁!
그러자 남자의 살 냄새에 반응한 듯 좀비가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 여보, 너무 늦었지?”
과거의 남자는 차마 그녀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평온을 줘야 했었다.
그것이 남자에게 남은 여한.
남자가 목걸이에 묶은 총알을 떼어 내더니 그것을 권총에 채웠다.
“미안해, 여보.”
-우으으으…….
철그럭! 철그럭!
좀비가 남자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사슬 때문에 그것은 닿지 않았다. 남자가 그런 좀비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그동안 괴로웠지? 이제 곧 편하게 해 줄게.”
떨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향해 움직였다.
“걱정 마, 나도 금방 따라갈 테니.”
남자가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남자가 부릅 커진 눈으로 자신의 발아래를 랜턴으로 비췄다.
바닥을 기고 있는 어린애가 보였다.
그것은 바로 아내에게 내장을 뜯어먹혀 죽었던 그의 딸이었다.
우득, 우드득!
그 아이가 지금 남자의 다리를 움켜쥐고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마……리?”
남자가 울음기 섞인 음성으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캬악!
쓰러진 남자의 어깨에 아내의 이빨이 파고들었다.
* * *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자는 생각했다.
독으로 죽는 게 빠를까?
아니면 좀비로 변하는 게 빠를까?
스스로의 몸을 쇠사슬에 묶은 남자의 옆에는 머리가 쪼개진 여자와 아이의 시체가 있었다.
남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깃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족이 모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어.”
남자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었다.
“크크, 결국 마지막 총알은 내 몫이었나.”
자조하던 남자가 눈을 감았다. 서늘한 총구가 그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끼릭.
그가 막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였다.
저벅저벅.
그때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철그럭철그럭.
그리고 사슬을 바닥에 질질 끄는 낯익은 소리.
남자가 눈을 떴다.
열에 들뜬 눈동자에 희미하게 지하실로 내려오는 존재를 비쳤다.
이브였다.
방공호에 있을 이브가 왜 이곳에 있을까?
남자는 이것이 죽기 직전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메마른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좀비화되어 가고 있는 딱딱하게 돌처럼 굳은 혀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미. 아아. 해.”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가 한계였다.
이브는 텅 빈 듯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사슬에 묶여 있는 남자를 담았다.
‘알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네 소원대로 곧 죽어 줄 테니.’
남자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남자는 보았다.
이브의 뒤로 은밀하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한쪽 팔이 없는 노인, 넝마처럼 헤진 신부복과 목에 걸린 빛바랜 십자가가 남자의 눈동자에 박혔다.
에덴에서 남자에게 한쪽 팔을 잃고 달아났던 신부였다.
눈알이 녹아내려 텅 빈 눈동자에서 사나운 어둠이 넘실거렸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전형적인 증상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은 저 신부처럼 안구가 녹아 내린다.
지금 열에 들뜬 그의 눈동자처럼.
남자는 갈등했다.
좀비에 민감한 이브라면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쳤을 것이다.
이건 죽어 가는 자신이 보는 환상이다.
저런 환상을 위해, 인간으로서 죽기 위한 이 마지막 총알을 낭비할 순 없었다.
-키아아!
신부가 이브의 머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다.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이브는 멍한 눈으로 사슬에 묶인 남자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브가 알고 있던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가 다시 이브를 향해 손을 뻗었다.
채 한 뼘의 거리를 두고 그의 손이 닿지 않았다.
남자가 카악카악 괴성을 지르며 눈동자가 녹아 어둠만이 넘실거리는 눈으로 이브를 노려보았다.
지하실로 한 줄기 바람이 스며들었다.
남자가 과거에 만든 이마의 상처가 바람에 말려 스르륵 가려졌다.
이브는 한참 동안이나 남자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다음 날.
굳게 잠긴 지하실의 문 앞에는 주인을 잃어버린 도끼와 녹슨 사슬 개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 * *
장르 : 좀비 아포칼립스
제목 : 라스트 불렛(마지막 총알)
부제 : 피 묻은 도끼와 녹슨 사슬 개 목걸이
The End]
지구, 대한민국의 부활 병원의 최상층 특수 병실.
그곳에는 모든 이들에게 잊혔지만, 지구에서 유일하게 그 남자를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
헌터가 존재했던 세계에서는 미라클이라 불렸던, 백발의 여인 유미래.
그녀가 운명 개변하기 전 창조신의 화신인 사신에게서 받았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며……..
“정말 이렇게 끝낼 생각인가요?”
라고 물었다.
“유일신 님.”
그러자 마치 대답하듯 텅 빈 페이지에 글씨가 새겨졌다.
슥, 스스슥.
외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지하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도끼와 녹슨 사슬 개 목걸이를, 머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신부의 시체를 지나쳤다.
그 끝에는 남자가 고개를 힘없이 떨군 채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르르…..
나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좀비가 되어 버린 그를 보았다.
그는 이브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죽을 마지막 기회를 버렸다.
나는 이브가 떠나기 전, 좀비가 된 남자를 향해 힘없이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아……빠.”
나는 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