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86)
사람은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 결국 자기자신 뿐이다.
자기 자신이기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루시 메이릴은 에드를 잃은 자신이 어땠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이 세계의 루시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도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었다.
상상해본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세상을 떠난 이 곳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남아왔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아달라는 그 남자의 유언에 매여있다면, 죽지 못해 사는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이 세계의 루시에게, 그 모든 것을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비탄에 빠진 루시를 끌어안아주며 코끝을 훌쩍댄다.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표정 한 켠으로 피어오르는 한줄기 비통함이, 아린 가슴에 스며들어온다.
이쪽 세계의 루시는 살아있었음에도, 본인의 생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지옥도로 변해가는 이 아켄섬을 방치해둔 채 은둔해서, 그 누구의 앞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비탄에 빠진 예니카를 막아서고, 그나마 섬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말이다.
눈을 감으면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자기 자신 아닌가. 거기다 단서도 충분했다.
– ‘이 아켄섬을 성역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로, 아무리 섬을 구석구석 뒤져도 에드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어’
– ‘네가, 에드의 시체를 거두어 간 거지?’
예니카는 이 쪽 세계의 루시가 에드 로스테일러의 시체를 거두어갔다고 추측했다.
그 추측에 신빙성이 실리고 만 것은, 루시 자기 자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를 잃었다면, 에드를 되찾으려 했을 것이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라 생각하며 과거의 인연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은 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글록트를 떠나보냈지만, 에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생을 알려준 스승과, 함께 인생을 살아준 동반자.
둘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그제서야, 제 안에서의 에드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더 확실하게 실감하고 만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떻게든 쓸어내리며, 에드의 시신을 보존한 채 계속해서 성위 마법을 연구했을 것이다.
그것은 허황된 목표로 치부할 수는 없다.
평생토록 성위마법을 연구해 실제로 사자소생마법을 구현해낸 자를 한 명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글래스트 교수다.
글래스트 교수의 성위마법을 이용해 글록트를 살리지 않았던 것은, 글록트는 그런 금기를 범하는 것을 죄악시 여겼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 운명대로 살다 가기로 결심한 대마법사를 억지로 되살려봤자, 그에 대한 모욕밖에 안되니까.
그러나, 에드는 다르다.
루시에게는 어느새부턴가… 글록트만큼이나, 아니 글록트보다도 더 큰 의미로 다가온 사내다.
금기 같은 것에 구애받는 자도 아니며, 함께 루시를 이해하며 살아가 줄 유일한 동반자이기도 했다.
에드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래스트 교수는 세상에 없다.
그가 남겨놓은 학술적 유산도 모두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절대적인 마력의 양이나 응용력은 루시가 압도적이지만, 성위마법에 대한 학술적 이해와 연구는 그 늙은 교수를 따라갈 수는 없을 터.
그러니, 맨바닥에서부터 스스로 성위 마법을 연구해가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사자 소생을 연구하는 것은 마법 분야에서 금기 중의 금기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일에 가담하면 뒤끝이 좋지 않을 게 뻔할 뿐더러, 관련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낌새를 눈치채는 인간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 루시 메이릴에게는 긴 시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성위 마법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예니카가 만든 성역이다. 이 아켄섬이라는 닫힌 세계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공간일 것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장소는… 글록트의 묘가 있었던 서쪽 해안 동굴이 적절했을 것 같다. 그곳은 오로지 루시와 에드만이 알고 있었던 공간이며, 연구 시설들을 잔뜩 쌓아놓고 은신 마법을 덕지덕지 발라두면 몇 년이 지나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에드의 시신을 보존해두고, 불타버린 아카데미의 잔해에서 어떻게든 연구자료들을 긁어모아서 성위 마법을 연구해나간다.
아마 에드를 살려내는 데에 성공할지라도, 자신은 금기를 범한 마법사로 역사에 기록되어 마법계의 적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마 평생을 젤란처럼 숨고 도망치며 살아야겠지만, 자신은 그래도 상관없다.
그렇기에, 혼자서라도 짊어진다. 수백 수천장의 양피지 위에 온갖 성위 마법이론들을 써내려가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에 매몰되어야만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글래스트 교수는 사자 소생의 마법에 도달하는 데에 평생을 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루시는 마력에 대한 이해도도, 마법 이론을 익히는 속도에 있어서도 천재다.
그가 평생을 바쳐가며 이룩해온 학술적 업적일지언정, 루시라면 훨씬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함은 분명하다.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알 수 없다.
인고의 세월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바깥은 더욱 더 지옥처럼 변해가고, 사람들의 눈에 생명력이 사라져가고 있을지라도.
어두운 해안동굴 가운데에 앉아, 연필을 서걱거리며 성위 마법의 이론들을 발전시키고 전개해나간다.
동굴 전체를 가득 매운 연구 이론들의 기록이 하늘을 찌를듯이 높아져가고.
째깍대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도 않을 때 쯤이 되어서야… 문득 이리저리 놀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떨굴 것이다.
힘들다. 고독하다. 슬프다. 아프다.
어느새부턴가 그런 감정들로부터 초월해, 사자소생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에 매몰되어서 살아온 세월이 몇 년.
어느 순간, 주먹에 힘이 탁 풀어지듯이 감정의 둑이 무너져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밀려올라오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감정의 둑은 그렇게 간헐적으로 예고 없이 터져버리곤 한다.
젤란의 모습을 보고 묘하게 슬픈 기분이 들었던 이유를 깨닫고 만다.
절단자 젤란의 모습은…. 에드를 잃어버린 루시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있다.
만약 에드를 잃었다면, 자신도 그 정처없이 삶을 떠도는 마법사처럼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껴버렸기에, 루시는 젤란과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었다.
“힘들었구나.”
조용히 입을 열어서, 눈앞의 숨죽여 오열하는 자신의 등을 두들겨준다.
눈앞의 자신을 위로할 수가 없다.
앞으로 몇 년의 세월을 더 인고해야만 할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가늠조차 가지 않는 그 끝없는 슬픔의 늪에, 루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아픔을 공감해주는 것 뿐이다.
이 세계의 루시는 자신과는 많이 달랐다.
좀 더 초췌한 인상에, 몸 여기저기엔 온갖 연구용 두루마리와 서책이 노끈으로 묶여있다.
그 모습만 보아도… 이곳의 루시가 헤쳐왔을 시련은 자신이 상상했던 바와 많이 다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깨닫고 만다.
다만, 너무 힘들고 힘들어서…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서, 지금의 루시를 불러낸 것이다.
초췌해진 그 소녀가 갈라져가는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넌, 내가 되고자 하는 나야.”
지금에선 허황되고 머나먼 목표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손을 뻗어도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만 같아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모두는 존중 받아 마땅한 자다.
인생이란 가치 있는 것으로 가득차 있어,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법이다.
그리 당당히 이야기 하며 예니카에게 맞설 수 있는 자신이 이 소녀에게는 너무 눈이 부셔보였을 터.
어쨌든 그런 자신도, 이 방대한 가능성의 세계 중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러면 자신 또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루시는 비탄과 슬픔에 빠져버린 자신을 꽉 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 말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응.”
언젠가는 이 모든 슬픔도 끝이 나리라.
너무 멀고 아득한 목표라 할지라도,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기필코 손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하염 없이 나비를 쫓다보니, 어느 샌가 양손에 그 아름다운 나비를 쥐고 있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 함께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해본다.
끊임없이 성위 마법을 연구하고, 그 학술적인 수준을 끌어올린 끝에 에드가 눈을 뜨는 그날의 장면이다.
정신을 차린 에드가 관을 열고 나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루시를 맞이해주는 것이다.
루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에드에게 안기고 한참을 울 것이다.
그리고 나선 해야할 일이 많다. 아직 여정은 한참이나 남았다.
시간감옥에 갇힌 예니카를 꺼내고, 복수심에 불타는 로르텔을 수습한 뒤, 대륙 어딘가에서 긴 휴식을 취하며 몸을 회복하고 있을 벨브로크를 찾아내 마무리 지어야만 할 것이다.
아마 심장의 대부분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으니, 크게 어렵지는 않을 터. 그래도 아주 긴 모험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면 숱한 시련들을 이겨내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면 된다.
공식적으로 죽은 신분인 에드와, 금기를 어겨버린 루시이니 만큼 그리 빛나는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라멜른 산맥지대 같은 곳에 오두막을 두고 서로 부대껴 사는 것도, 클렘 해안지대에서 낚시나 하면서 바다를 보며 사는 것도 괜찮다. 두 사람이라면, 그곳이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너도 삶이란 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야기 할 수 있을거야.”
루시는 단언해주었다.
이 세계의 루시는, 지금의 루시가 너무나도 멀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삶을 찬미하며 지금의 고통을 지나간 흉터 쯤으로 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등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을 꽉 주며, 루시는 찡한 코 끝을 떨었다.
“….응, 이제 돌아가야할 시간이야.”
이 쪽 세계의 루시가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마력이 없다. 예니카를 제압하는데 모든 마력을 써버린 루시는, 다시 마력을 회복하려면 최소 몇 년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쪽 세계의 루시는 품속에서 금이 잔뜩 간 불사조 반지를 꺼내들었다.
“그…그건…”
글래스트의 황금 불사조 반지는, 대현자 실베니아를 제압하기 위해 억지로 마력을 끌어쓰다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쪽 세계에서는 불사조 반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이 쪽 세계엔 실베니아가 개입하지 않았단 사실을 떠올렸다. 에드의 유품인 반지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던 것이다.
불사조 반지에서부터 다시금 마력이 피어오른다. 그 막대한 양의 성위마력을 전부 끌어내서, 이쪽 세계의 루시는 지금의 루시에게 그 마력을 전부 건네준다.
루시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서는…. 눈앞의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력이 충분하지 않아.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제 잡념 같은 건 모두 지워.”
“…뭐?”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네가 그렇게 살아있고, 행복하게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큰 구원이었어.”
눈물을 전부 닦아낸 이 세계의 루시는, 이를 악문 채 이야기했다.
“이제, 널 찾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지.”
루시는 안타까운 표정을 했지만, 이쪽 세계의 루시는 다부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 쪽 세계의 흐름으로 되돌아가면, 정신을 집중해서 에드 로스테일러의 마력을 찾아내.”
수백 수천개의 흐름이 소용돌이 치는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을 에드의 팔을 다시금 잡아채야만 한다.
“그 애라면 널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겠지.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해.”
“너는…”
“난 내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았으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말하는 이 세계의 루시는, 어렵사리 웃어보였다.
평생 미소를 지었던 적이 손에 꼽는 루시였기에, 눈 앞의 자기 자신이 한결 어색해보였다.
필시 가시밭길을 걷다가 생긴, 자신답지 않은 습관일지도 모른다.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루시의 몸에 부유감이 휘감겼다.
온몸에 휘감긴 성위 마력의 힘은, 루시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