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전범재판 (2)
독일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 짐작한 처칠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추한 모습을 남기기보단 의연한 모습으로 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비웃음과 적대로 가득한 시선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오직 전쟁에서 졌다는 것, 그것뿐이오. 나라를 패전으로 이끌었다는 죄목으로 죽으라면 내 기쁜 마음으로 죽겠지만 내가 짓지도 않은 죄로 죽어야 한다면은-”
“피고는 입 다무시오! 아직도 자기가 총리인 줄 아는가!”
처칠의 반론을 허용해 줄 생각이 없던 프라이슬러는 소리를 내질렀다.
프라이슬러의 서슬 퍼런 위협에 처칠은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체념이 그에게 마지막 남은 용기를 쥐어짜게 했다.
“대영제국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았소! 전쟁은 원한 것은 당신네 독일인들이었지! 1914년도 그렇고, 두 번이나 유럽을 피로 물들인 나라가 누굴 심판한단 말인가!
나는 대영제국의 국익을 수호하고 유럽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소. 비록 전쟁에서 졌지만, 그것을 잘못이라곤 생각하지 않소. 만약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주저 없이 독일과 다시 전쟁을 벌일 것이오.”
“입 닥쳐! 이 돼지 새끼야!”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참다못한 덴마크, 노르웨이 판사가 소리를 질렀다.
단치히니, 폴란드니 하는 문제에 관심을 끄고 조용히 살다가 별안간 영국의 기습공격을 받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입장에서 처칠의 발언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독일에 빌붙은 주제에 꼴에 승전국이라고 으스대는 약소국들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를 치는 건가!”
“뭐야?!”
“대영제국은 아직 패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몸종의 신세로 전락해 있을지 몰라도 때가 되면 전 영국인들이 들고 일어나 너희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유럽의 자유를 수호하리라!”
덴마크, 노르웨이 판사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내가 죽고 수십 년 후에, 그러니까 영국이 독일의 마수에서 벗어나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되찾았을 때 영국 전역에는 내 동상이 세워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 파시스트들은 너희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개처럼 끌려다닐 테고!”
연설을 끝낸 처칠은 다시 착석했다. 덴마크, 노르웨이 판사는 얼굴이 붉다 못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핏줄이 불거져 나왔지만 슐레겔베르거가 그들을 제지했다.
“할 말은 다 끝났소?”
“끝나기는! 아직 한참 더 남았소.”
“그건 본인 혼자 있을 때나 하시오.”
재판은 이제 막 시작이었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슐레겔베르거는 처칠의 장황한 연설을 듣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피고는 들으시오. 앞으로 발언을 허가받지 않고 발언할 경우 재판을 받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하겠소.”
“그 무슨 폭거란 말-”
“거기서 한마디만 더하면 즉시 퇴장당하게 될 거요. 개처럼 끌려다니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기 싫다면 자중하시오.”
슐레겔베르거가 손을 까딱거리자 험상궂은 외모를 한 거구의 헌병 2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곤 처칠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허튼짓하면 국물도 없다는 얼굴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던 처칠도 조금은 기가 죽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는 것으로 수용의 의사를 밝히자, 검사와 판사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삐져나왔다.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평화에 대한 범죄를 공모한 것을 피고는 인정하시오?”
“……인정하지 않소.”
“그것이 피고의 대답이오?”
“그렇소.”
“알겠습니다.”
이후로도 검사의 질문이 여러 개 있었고 그때마다 처칠은 짧게 대답했다. 질의가 끝나고 이번엔 해리스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무죄요.”
해리스도 처칠처럼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군인으로서 국가가 내게 지시한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오. 군인이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조차 유죄가 된다면, 세상의 어떤 군인이 죄인이 아니란 말이오?”
“피고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소.”
“죄 없는 민간인들이 사는 도시에 폭탄을 투하한 것이 어찌 군인의 본분이란 말인가!”
검사와 판사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해리스는 자신의 시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 역시 처칠처럼 목숨을 구걸하며 비웃음과 경멸을 사기보단 차라리 당당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피고의 입장이오?”
“그렇소.”
“잘 알겠소. 그렇다면 내 하나 묻겠소. 당신이 내린 폭격 명령으로 영국 국왕과 왕비가 사망한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 그것은……!”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 나오자,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던 해리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해리스는 처음에는 그것이 실수였다고 말했다가 이내 아차 싶었는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를 쳐다보는 영국인 피고들의 시선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
영국 다음 차례는 소련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소련의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한때 소련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그가 지금은 승자들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신세가 된 것에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역사의 변동을 체감하며 혀를 내둘렀다.
소련과 상대적으로 원한이 적은 덴마크, 노르웨이 판사는 처칠, 해리스를 대할 때와 달리 침착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소련에 의해 두 번이나 침략을 당하고 전 국토가 공습으로 큰 피해를 본 핀란드에서 온 판사는 그를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처칠, 해리스처럼 스탈린 역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말하시오.”
“이유랄 것이 있겠소? 나는 전쟁에서 졌을 뿐인데. 본래 전쟁에서 지면 유죄고, 이기면 무죄가 아니겠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든 간에 말이지.”
“허! 잘도 나불거리는군.”
핀란드 판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탈린은 위축됨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논리를 설파했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오. 폴란드는 과거 소비에트를 침략하고 영토를 강탈했기에 응징했을 뿐. 핀란드 역시 핀란드가 먼저 도발해오지 않았다면 나 역시 핀란드를 공격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오.”
“입 닥치시오! 입 닥쳐!”
스탈린의 뻔뻔한 대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핀란드 판사가 욕설을 퍼부었다.
잠깐의 소동이 있고 난 후, 프라이슬러가 스탈린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물었다.
“그럼,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이건가?”
“그렇소.”
“카틴 숲에서 발견된 폴란드군의 시체들은 뭐지?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나는 모르는 일이오. 아마도 베리야의 NKVD가 독단으로 저지른 짓이겠지.”
스탈린은 자신에게 이어지는 여러 질문에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가 답변할 때마다 핀란드 판사는 악에 받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이미 죽음이 예정된 몸. 여기서 무슨 말을 하건, 저들 귀에는 변명이나 목숨 구걸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한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다는 게 스탈린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그의 부하였던 자는 조금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피고는 피고가 소련에서 가졌던 위치에 관해 설명하시오.”
스탈린 다음은 스탈린보다 앞서 독일의 포로가 된 예료멘코의 차례였다.
“피고는 피고가 침략전쟁에 가담하고 이를 실행한 것을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예료멘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스탈린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예료멘코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예료멘코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피고는 포로로 잡은 독일 병사들을 학대하고 학살한 것에 대해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투 도중에 벌어진 우발적인 일이며 저는 포로들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학살하라고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제게 부하들의 범죄행위를 단속하지 못한 죄는 있지만, 각종 학살을 직접적으로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몫이오.”
예료멘코가 착석하자 스탈린은 그를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예료멘코 역시 스탈린의 시선을 인식한 듯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미끄러졌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예료멘코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지난날 예료멘코를 숙청하지 못했음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피고는 날조된 죄목으로 체포된 이들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정치범들의 처형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그, 그 건은 정당한 재판이었소! 그들이 소비에트 연방의 안전을 해하는 반역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들이 모두 있단 말이오.”
스탈린의 사냥개로서 대숙청 기간 내 수만 명의 정치범들에게 사형을 언도한 바 있는 비신스키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항변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대숙청 기간 당시 프라이슬러는 소련을 방문해 비신스키의 재판에 참석한 바 있다는 것이었다.
비신스키의 재판 과정을 연구한 프라이슬러는 이를 그대로 자신의 재판에서 써먹었다.
그랬던 자신이 과거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비신스키를 심판하게 된 현실에 프라이슬러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거나 자비를 베풀 생각은 아니었다.
스탈린은 믿었던 부하가 포로가 된 것도 모자라-정작 그 자신도 포로가 된 입장이었지만-치졸하게 자신만 살려고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을 보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예료멘코의 ‘배신’은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증인, 나오시오.”
“……!!!”
재판장에 출두한 증인을 보는 순간, 스탈린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스탈린뿐 아니라 재판장의 소련인 피고들은 증인의 정체를 깨닫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째서 저자가 이곳에 있는 거지?
“증인의 이름과 소련에서의 직책을 밝히시오.”
“그리고리 이바노비치 쿨리크, 붉은 군대의 원수였습니다.”
***
쿨리크는 억울했다.
부하들을 모두 내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몸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억울했다.
어째서, 왜 자신이 이런 고난과 수모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스탈린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며 전쟁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전과다운 전과도 냈고, 부상을 입고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자신의 충성심을 의심한 채 끝내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쿨리크는 살고 싶었고 그랬기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반란은 그대로 진압당했고 그는 몸만 겨우 빠져나와 중국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장제스는 그가 알고 있는 정보들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아낌없이 알려주는 조건으로 쿨리크가 중국에서 식객으로 있는 것은 허락해줬다.
소련에 대한 원한이 가득해서인지, 혹은 정보제공자에 대한 응당한 보답인지는 몰라도 쿨리크는 중국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음식이 조금 입에 맞지 않는 것만 빼면 중국에서의 생활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쿨리크는 여전히 자신의 현실에 울분이 가득했다.
그는 소련에서 원수까지나 진급했었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화려한 저택, 별장, 진귀한 음식…….
하지만 그가 소련에서 원수라고 해서 중국에서도 원수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중국 입장에선 숙청을 피해 도망친 망명객에 불과했다.
정보 제공의 대가로 어느 정도의 예우는 해주겠지만, 소련에서의 호화스러운 삶에 익숙해진 쿨리크에게 최소한의 조건만 맞춰주는 중국에서의 삶은 불만족스러웠다.
매일매일 술로 울분을 달래는데, 어느 날 국민당이 그를 불렀다.
“나를? 이미 아는 건 모두 말해줬을 텐데?”
긴가민가하며 국민당 정부로부터 제공한 저택을 나선 쿨리크는 예상치 못한 손님과 만났다.
“오스카 트라우트만이오. 만나서 반갑소.”
“어, 음…… 반갑습니다.”
쿨리크를 부른 이는 주중 독일대사 트라우트만이었다.
“나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쿨리크 원수. 중국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드시오?”
트라우트만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쿨리크는 그가 자신을 원수라고 불러주는 것에 만족하면서도 질문의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건 무슨 뜻이지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시오. 소련에서 당신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소. 하지만 중국에서 당신은 그저 망명객에 불과하지. 물론 중국인들이 당신을 섭섭하지 않게 대해주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소련에서 누리던 생활과 비교해서 아쉬운 게 많지 않소?”
이건 대체 뭐지? 거침없는 트라우트만의 질문에 쿨리크의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혹시 국민당에서 자신의 사상을 의심하고 시험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독일대사도 국민당에 협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독일대사씩이나 되는 이가 굳이 국민당의 지시에 따를 이유가 있을까?
“어쩌겠소. 다 내 팔자인데 누굴 원망하겠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쿨리크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소련에서 살면서 배웠던 처세술이 아직은 그에게도 남아있었다.
“그래도 과거 생활이 자주 생각나지 않소?”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원하는 답을 받아낸 트라우트만은 웃었다. 쿨리크의 의문은 커져만 갔다.
“만약, 만약에…….”
“?”
“과거에 누렸던 호화스러운 생활을 다시 누릴 기회가 온다면?”
“그건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요. 과거에 누렸던 호화스러운 생활을 다시 누릴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떻게 할 거요? 적어도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걸 안 잡을 바보가 있겠소?”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소.”
그제야 트라우트만은 진짜 본론을 꺼냈다.
“당신이 중국에 전한 정보들을 독일에도 알려주고,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해서 증언을 해주시오.”
“무슨 증언?”
“소련 정권이 저지른 각종 범죄.”
“그다음에는?”
“제3제국은 당신에게 남부러울 것 없는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겠소. 자유 러시아 정부도 당신을 ‘공화국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찬성했소. 재판에 출두해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따른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호사를 누리며 살 수 있소. 이미 중국과도 다 얘기가 끝난 상태요.”
중국과도 얘기가 다 끝났다는 말은 장제스가 자신을 독일에 넘기는 것에 찬성했다는 소리였다.
쿨리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얘기가 빨라서 좋군. 내일 중으로 출발할 수 있게 바로 짐을 챙기시오.”
“짐이랄 것도 없지요. 가능하다면 오늘 바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약삭빠른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