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70)
제370화
-오오오오오오오오!
이바렐라의 대제가 휘두른 검을 마주하며, 제롬의 철탑거인 또한 그런 대제를 향해 주먹을 뻗어냈다.
쿠우우웅! 파사사삭!
두 절대자의 기운이 휘몰아치자, 충격을 견디지 못한 어전이 완전히 부서졌다.
어전은 단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황궁이 넓다 한들, 두 절대자가 날뛰기에는 비좁은 공간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콰아앙!
제롬의 주먹에 황궁의 정원이 터져 나갔고.
촤아아아악!
이바렐라의 검격에 황궁의 성벽이 잘려 나갔다.
콰르르르륵!
황궁의 벽이 무너져 내리자 황도의 제국민들, 그리고 바티칸에 침입해온 블리자드 기사단과 머메이드 해적단 역시 비로소 그들의 싸움을 목도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철탑의 거인이 대제의 얼굴을 터뜨릴 것처럼 후려친다.
콰우우욱!
대제의 칼이 철탑거인의 허리를 반으로 가를 듯이 베어간다.
한 번의 주먹, 그리고 한 번의 칼날이 교차할 때마다.
황궁을 벗어난 기운들이 흩날리며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만들어냈다.
두 절대자가 뿜어낸 기운의 조각이 시가지에 닿자.
퍼어어엉!
휘말린 인간들이 마치 다진 고기처럼 터져 나간 채 흩날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이, 이런!”
“다, 다들 대피해라!!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빨리 움직여!!”
바티칸의 민간인들은 물론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싸움을 이어가던 성기사단도, 올리비아의 병력들도.
싸움을 멈춘 채 저마다 후퇴하기 바빴다.
영광스러운 전투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과, 그저 절대자들의 싸움에 휘말려 개죽음당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으니까.
콰아아아아앙!
막대한 경력을 품은 일격들이 충돌하자, 동심원을 만들어내며 사방으로 기운이 휘몰아친다.
쿠우우우우우!
맞부딪친 주먹과 곡도 사이.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제롬과 이바렐라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한 사람은 이 대륙에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가장 높은 곳에서 군림하던 자이며.
또 한 사람은, 좋은 출신이었지만 스스로의 재능을 썩히며 바닥을 기던 중 밑에서부터 올라온 자였다.
삶의 결도, 살아온 환경도, 받아온 대접도, 생각하는 가치관도.
공통점이라고는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둘은 다르면서도 놀랍도록 비슷했다.
어쩌면 운명의 추가, 주변의 환경이.
조금만 달랐다면, 둘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 와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단지, 서로가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할 뿐.
누구의 의지, 누구의 심상이 더 강하고 단단한지 결판을 내는 것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대해와도 같은 기운과 기운이 명멸하며 충돌을 계속한다.
그러나 끝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대혈투라도 결국에는 종말을 맞이하는 법.
영원을 허락받은 것은, 오직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황금빛 거인이 백광의 대제 앞에 튕겨 나간 채 시가지를 나뒹군다.
콰르르르르륵!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비산하는 흙먼지 속, 제롬이 눈가의 핏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크으윽!”
‘…강하다.’
불세출의 인재.
철혈의 군주, 괴물 황제의 격은 어디 가지 않는 것인지.
이바렐라는 정말로 강했다.
전생에 괴물 황제로 군림하며, 대륙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되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건만.
‘…아니.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강해진 건가.’
어쩌면 이바렐라를 강하게 만든 건, 제롬 본인일지도 몰랐다.
전생의 모든 계획들을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던 이바렐라와 달리.
지금의 이바렐라는, 자신이 끝없이 벽이 되어 그녀를 계속해서 막아섰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처음으로 벽이라는 존재를 마주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본인의 한계를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군.’
이바렐라를 막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이바렐라를 일깨우는 촉매제가 될 줄이야.
콰르르르르르!
부서진 돌과 잔해들을 치우며 제롬이 일어서는 사이, 이바렐라가 천천히 제롬을 향해 걸어왔다.
“조금씩 부서지고 있구나, 제롬. 그대도 느끼고 있지?”
곡도를 들지 않은 손으로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으며, 이바렐라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무런 고양감도, 흥분도 없이.
그저 정해진 현상을 관찰하듯이 냉정하게 말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이를 악물며 자세를 잡는 제롬을 향해 이바렐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끝났다는 걸 그대도 알고 있을 거야. 이 승부의 추가 내게 기울었다는 걸, 그대 정도 되는 무인이 모를 리 없지.”
“…….”
이바렐라의 말에 제롬이 이를 악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이바렐라의 힘이 너무나 강대해져 있었다.
제롬의 진정한 힘은 오러도, 판크라티온도 아니다.
그의 진정한 힘이자 정체성, 그리고 근간을 이루는 힘은 바로 이종의 힘, 강철(鋼鐵)이었다.
제롬이 그 어떤 적의 공격도 막아내고, 튕겨내고,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새.
그 견고한 요새가, 이바렐라의 대륙을 정벌하겠다는 신념이 어린 곡도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지금까지, 강철이 무력화되었던 적이 처음도 아니었다.
베라스를 상대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다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4단계의 경지라는 것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열세라고 해서 쉽게 포기할 것 같았다면.
애초에, 이런 무모한 작전 따위 계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싸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를 잡으며 항전의 의지를 보이는 제롬을 보며, 이바렐라는 담담히 곡도를 내밀었다.
“뭐, 그렇다면야.”
콰우욱!
이바렐라는 여유를 잃지 않는 와중에도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록 열세라고는 하나, 제롬은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과 죽음을 딛고 이겨낸 역전의 용사였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방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야, 어찌 황제의 자격이 있다 말할 수 있겠는가.
촤아아아아악!
제롬의 주먹과 발을 흘려내며, 철벽같은 가슴을 반으로 갈라낸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제롬의 핏물을 뒤집어쓰며 이바렐라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롬, 난 말이야… 여기서 너를 죽이고, 황도의 수습을 마치면. 직접 대륙을 향해 친정(親征)을 나갈 거야. 다시 처음부터, 온 국가의 힘을 모아서 말이지.”
담담히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이바렐라의 목소리에는 피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그 시작점이 제국을 사사건건 방해하던 방패가의 후예인 너를 부수는 일이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부순다.
연맹을, 그녀를 가로막던 신과 운명의 방해를, 그녀가 틀렸다 말하는 모든 이들의 생각을.
이바렐라의 선고와도 같은 목소리가, 제롬의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뒤흔든다.
‘…부순다, 고?’
아니.
그렇게는 안 된다.
터어억!
휘청대는 제롬이 다시금 다리에 힘을 주며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지킨다.
연맹을, 대륙을 피로 씻을 괴물의 공격을,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이가 쥐여준 이 다시없을 기회를.
‘나는, 부서지지… 않아.’
나의 신념과, 기회.
그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제롬은 과거로 돌아온 이후 스스로의 정신을 끊임없이 계속 담금질했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결코 메꿀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제국과의 격차 앞에 제롬의 마음은 끝없이 꺾이려 했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고독감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참혹한 미래는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몇 번이고 부서질 뻔했었다.
그러나.
수없이 꺾이고, 부서지고, 무너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계속해서 고난을 이겨냈던 제롬의 신념은.
어느새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강철(unbreakable)이 되어 있었다.
…부우우우우우우!
제롬의 피투성이가 된 몸이, 대제의 무자비한 공격 아래 부서져가던 철탑의 거인이.
공명하며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
제롬의 모습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 탓일까.
이바렐라가 지체 없이 곡도를 휘두르자 대제의 검이 제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지금까지의 일격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일대를 박살 내는 강렬한 공격.
바티칸의 시가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그 파멸적인 공격의 뒤, 철탑의 거인은 자신의 건틀릿을 교차한 채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
두 번의 삶 속에서 홀로 고독함과 두려움을 견뎌내며 단련해온, 방패가의 후예로서 가진 신념.
그 신념은, 어떠한 외부의 공격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
강철(鋼鐵), 최종 오의(奧義).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하! 이제 와서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이바렐라가 발악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금 이 순간.
인생 최대의 대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기 직전인 이 상황 속에서.
적이 때마침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니.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불합리함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치 ‘누군가’가 이 상황을 안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내가.’
제국을 넘어, 대륙의 가장 높은 황제의 위(位)에 오를 이 이바렐라가.
고작해야, 신의 장난질 따위에 무릎을 꿇을 것 같은가!
————-!!!
막대한 기운을 품은 철탑거인과 대제가 계속해서 충돌을 이어간다.
서로의 숨통을 노리고, 서로의 의지를 관철하려 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투는 마치 아까 전의 싸움을 다시 한번 재연하는 것만 같았지만.
…쿠우웅!
쓰러지는 쪽은,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홀로 고귀하여 지상을 굽어살피던 대제의 무릎이 서서히 꺾여간다.
하늘조차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굴강한 환영이 점멸을 반복하며 서서히 흐릿해져 간다.
흐릿해져 가는 심상기가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전자가 자신의 굳건한 심상을 유지할 정신이 없다는 의미였기에, 즉.
…죽음이,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하아, 하아….”
울컥, 울컥!
쓰러진 이바렐라의 입가와 벌어진 피부 곳곳에서 내장 부스러기가 섞인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저벅, 저벅!
기운이 꺼져가는 이바렐라의 앞으로 제롬이 천천히 다가간다.
제롬 역시 피에 뒤덮인 혈인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다리는 여전히 굳건하게 대지를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진 건가?”
“그래. 그대가, 패했다.”
“후후후….”
이바렐라는 꺼져가는 시선 속에서도 제롬을 향해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전부, 끝났다고. 생각해?”
“…….”
제롬의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닌지, 이바렐라는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이어 나갔다.
“인간, 이 존재하는 이상. 대륙의 위정자들이 야망을, 가진 이상. 이번 같은… 일은, 커헉! 또, 일어날 거야. 신성제국의, 침략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처럼. 비록, 나는 막, 혔지만. 제국은… 또다시, 일어날 거다.”
맞는 말이다.
시기와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제국의 황제들은 언제나 남쪽의 대륙을 노려왔다.
이바렐라 이전에도 존재해왔고, 그리고 앞으로 먼 미래에도 그런 이들은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나를 막는 게, 네가 돌아온… 이유라고 했던가? 후후후, 과연… 너는 욕심에 삼켜지지 않을지. 먼 훗날의 미래에서도, 그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제롬은 이바렐라의 말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제롬이 제국과의 대전에서 이바렐라를 거꾸러뜨리는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상, 이케니아 왕국은 차후 연맹에서 그 영향력을 공고히 할 것이다.
또한 강자들을 대거 잃어 줄어들 신성제국의 위상을 대신하여, 어쩌면 이케니아 왕국이 대륙의 새로운 패자로 발돋움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롬은 과연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라고, 과연 대륙의 패자가 되고 싶은 욕심을 내지 않을까.
어쩌면 연맹의 내부에서 제롬과 카르비어트 가문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와 자멸할지도 모른다.
“너무, 너무 궁금하네… 그 광경을, 못 보고… 가는 게… 아쉬울… 뿐…이야….”
…투우욱!
그 말을 끝으로 이바렐라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대륙에서 다시 나타나기 어려운 불세출의 인재이자, 수많은 대륙인들을 전율케 만들었던 제국의 젊은 여황제.
이바렐라 폰 헤카론이, 마침내 그 명을 다하고 쓰러진 것이다.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어.”
이바렐라의 앞에서, 제롬은 그녀의 질문이자 혼잣말에 담담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이바렐라, 그대의 말처럼 이케니아가 새로운 대륙의 패자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왕국들이 우리 왕국을 배신할 수도 있고, 그대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별이 나타나 다시금 남쪽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바렐라의 말은 당연했다.
이 드넓은 대륙에, 어떻게 야망을 품은 이가 없겠는가.
이 드넓은 대륙에, 어떻게 분쟁을 원하는 권력자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몇 번이고 나타나도 상관없어. 어떤 위협이 찾아와도 상관없다.”
이바렐라의 말처럼 대륙 위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 분쟁과 갈등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끊임없는 위협이 인간이 대륙의 패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니까.
그러니, 제롬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단지, 막아낼 뿐이야.”
수십, 수백, 아니 수천의 위협이 몰아치더라도.
막고, 막고, 또 막아낼 것이다.
힘겨울지언정.
쓰러질 것 같을지언정.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
그것이.
방패가,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핏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며, 사명이었으니까.
저 멀리서, 올리비아의 병력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그들 또한 아는 것이다.
이바렐라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비는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제롬의 어깨에 올라온 짐들을 덜어주며.
축하한다는 듯이, 그 짐을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